프로바둑 해설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블루스폿(blue spot)’이다. 보통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해설하는데 인공지능이 다음 ‘최선의 수’를 파란 점으로 표시하기 때문이다. 블루스폿에는 이길 확률도 %로 표기되기 때문에 바둑의 유불리를 금방 알 수 있다. 블루스폿과 일치율이 가장 높은 기사로는 신진서 9단이 꼽힌다. 그의 별명이 ‘신공지능’인 이유다.
▷신 9단이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9회 응씨배 결승 2국에서 중국의 셰커 9단에게 승리하며 종합전적 2-0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 기사의 우승은 14년 만이다. 원래 2021년 결승전이 열렸어야 했지만 결승만큼은 대면 대국으로 하고 싶다는 주최 측의 바람 때문에 2년여 늦어졌다. 신 9단의 응씨배 우승은 개인적으론 명실상부 세계 1인자의 위치를 굳혔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바둑계로서도 의미가 깊다. 4년마다 열려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응씨배는 한국 바둑계의 발전에 ‘특이점’이 된 사건이었다.
▷응씨배는 대만 기업가 잉창치(應昌期) 씨가 1988년 40만 달러의 파격적 우승 상금을 걸고 출범시킨 세계대회. 당시 전통의 강호 일본과 신흥 강자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들러리 신세였다. 초청기사 16명 중 한국 기사는 조훈현 9단 달랑 1명이었다. 하지만 조 9단은 예상을 뒤엎고 결승에 올라 중국의 녜웨이핑 9단에 3-2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조 9단이 귀국할 땐 김포공항에서 서울 종로 한국기원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4회 대회까지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9단이 잇따라 우승했다.
▷인공지능 바둑이 등장한 뒤 인간 바둑의 인기가 시들해진 측면이 있다. 최고수가 AI인데 인간 바둑을 굳이 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100m 달리기도 자동차가 더 빠른데 인간이 0.1초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바둑도 마찬가지다. 신 9단은 “기사가 정상권에 오르면 뚜렷한 목표가 사라질 수 있는데, 인공지능으로 연구하면서 끝없이 발전하려고 한다”고 했다. 신 9단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인간 바둑을 보게 하는 묘미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