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 계곡 해발 3120m 절벽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탁상 사원. 부탄 사람들도 평생에 한 번은 참배해야 한다는 성지다.
부탄은 입국에서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해발 2241m 협곡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파로 국제공항은 시계비행으로만 짧은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 비행기가 산에 부딪혀 추락할 것만 같은 아찔한 곡예의 순간을 거쳐 활주로에 바퀴가 닿아서야 비로소 멈췄던 숨이 쉬어질 정도다.
파로 국제공항(아래)과 언덕배기에 요새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파로 종(사원).
부탄 여행은 각 지역에 산재한 종으로의 ‘탐험’이 핵심이다. 독특한 지형적 특색을 갖춘 종은 성스러운 에너지가 감도는 명당일 뿐만 아니라, 종과 관련돼 전해지는 기이한 전설이나 일화는 부탄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왕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나라
파로 공항에서 파로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의 소도시 규모인 팀푸에서부터 부탄의 대표적인 종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팀푸 시내를 굽어다보고 있는 도르덴마 불상.
도르덴마상 내부로 들어서면 12만5000기에 달하는 소규모 불상들이 사방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신앙심 깊은 부탄 사람들이 불상을 가져와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불상 터의 기운을 살펴보니 나무랄 데 없는 명당이다. 풍수적으로 권력과 부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부탄인 현지 가이드는 “원래 이 땅은 부탄의 장관 등 고급 관리들이 살던 관사 터였다”고 설명했다.
팀푸 시내로 내려와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재위 1952~1972년)를 기리는 국립추모탑(National Memorial Chorten)을 찾았다. 불경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추모탑을 돌면서 부처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3대 국왕을 위해 그의 어머니가 1974년에 조성한 탑이라고 한다.
부탄 3대왕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국립추모탑.
국립추모탑을 향해 서 있는 보살상. 마치 아들인 3대 왕을 그리워하는 어머니 같은 분위기다.
두물머리 명당의 푸나카 종
수도 팀푸를 중심으로 동쪽 권역으로는 푸나카 종과 치미랑카 종이 중요 포인트다. 먼저 1637년에 건설된 푸나카 종은 부탄에서 가장 웅장하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새 중 하나다. 이 종은 푸나카가 부탄의 수도였던 1955년까지 부탄 행정 및 종교의 중심 기능을 수행했다.
강 위로 놓인 사다리 문을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는 푸나카 종은 모추강(어머니강)과 포추강(아버지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천연 요새이기도 하다. 종 아래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실제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수리(두물머리)처럼 두 강이 합수되는 명당 터에 있는 이곳은 풍수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푸나카 종은 새하얀 외벽의 불그스름한 건물이 옥색 물빛과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연꽃처럼 보인다.
어머니강(모추)과 아버지강(포추)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푸나카 종.
푸나카 종 진입 다리 위의 두 부탄 승려. 부탄 사람들은 얼굴에 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자식을 기원하거나 어린 자식이 잘 크기를 기도하는 곳으로 유명한 치미라캉 사원.
이 사원은 15세기 때 고승인 람 둑파퀸리(1455~1570)의 기이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히말라야의 걸승’으로 기행을 일삼았던 그는 5000명의 여자와 섹스를 통한 탄트라 수행을 해왔고, 입적할 때는 자신의 남근을 잘라 나무에 봉인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많은 부부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치미라캉 사원에서 아이를 얻기 위해 남근상을 들고 사원을 돌고 있는 부탄 여성.
익살스럽게 남근 벽화를 그려 놓은 치미라캉 사원 입구의 마을.
절벽에 세워진 호랑이 둥지 수도원
팀푸 서쪽 권역으로는 탁상 사원이 있다. 해발 3120m 절벽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붙어 있는 탁상 사원은 부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명승지다.
이 사원은 ‘호랑이 둥지’라고 불린다. 8세기경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티베트 불교의 전설적인 인물인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내려와 사원을 건립했다는 얘기에 따른 것이다.
호랑이 둥지로의 여행은 만만치 않은 트레킹 코스다. 고지대라서 숨이 쉽게 가빠지는 데다,비탈진 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아찔한 절벽 사이로 난 길을 한참 오르면 중간 휴게소 격인 카페테리아에 닿는다. 입구에서 이곳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돈을 내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말을 타고 산비탈 길을 오르고 나면 말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냥 속 편하게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또다시 1시간 정도 호흡을 조절하며 오르면 사원에 도착한다. 사원은 바라만 보아도 신성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는 듯하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곳에 머물며 명상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동굴 중 하나에 남아 있다고 한다.
탄상 사원 입구에 있는 폭포는 사원 참배 전 세속의 때를 씻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위 절벽에 세워진 탁상사원은 풍수적으로 에너지가 강력한 명당 터다.
이곳은 1998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옛 사람들은 영험한 기운이 밴 장소를 호랑이, 용, 코끼리 등 동물을 끌어들여 상징적으로 묘사했는데, 이곳 역시 호랑이 둥지 터라고 해서 명당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실 절벽 위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탁상 사원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건설했는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행복한 나라’에 사는 부탄 여성들은 한국을 ‘꿈의 나라’라고 평가하면서 한국인 방문객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정부청사 기능을 하고 잇는 타시초 종의 국기 하강식. 향을 사르는 승려들의 전통 의식(왼쪽)이 이색적이다.
이 외에도 ‘보석 위의 요새’라는 뜻의 파로 종, 불교 사원이자 정부청사 역할을 하고 있는 타시초 종, 요괴를 바위 밑에 가두고 세웠다는 심토카 종 등도 들러 볼 만하다.
부탄으로 가려면
부탄 상공에서 본 히말라야산맥 연봉.
●부대 조건=부탄에서는 배낭여행 등 개별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여행객은 반드시 부탄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발전 비용(SDF)’ 명목으로 하루 1인당 200달러씩 여행 세금을 내야 한다. 부탄 당국은 SDF로 확보한 자금은 자연, 문화 전통 보호, 관광 인프라 구축 사업 등에 사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탄 여행은 이런 부대 조건을 감안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현재 인도·부탄·네팔 전문 여행사인 ‘다이너스티 코리아’가 부탄과 인도 여행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부탄 정보=부탄 사람들은 부탄어인 ‘종카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부탄의 사원으로 들어가려면 깃이 있는 티셔츠와 긴 바지가 필요하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 외에 부탄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부탄 외교부가 공식 승인한 한국부탄우호협회(회장 김민경) 홈페이지(www.koreabhutan.com)를 이용하면 된다.
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