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10년 쳤더니 4언더파도… 골프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정신수양 스포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3-08-26 12:00:00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의 건강법




농구코트에서 슈팅가드로, 녹색 그라운드에서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다 갑자기 필드의 고수가 됐다.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 겸 산학협력단장(58)은 골프 ‘핸디 3(평균 3오버파)’의 아마추어 골프강자로 거듭났다. 그는 한때 농구와 축구광으로 학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어릴 때부터 축구 농구 야구를 즐겼고 농구 명문 홍익대 부중·고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농구에 천착했다. 캐나다 유학 때도 농구 축구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귀국해서도 코트와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런 그가 10여 년 전부터는 골프에 빠져들었다.

최재붕 부총장이 골프장에서 드라이브샷을 날린 뒤 날아가는 볼을 바라보고 있다. 최재붕 교수 제공.

“농구와 축구를 즐기다 보니 어느 순간 무릎에 이상이 오더군요. 여기저기 잔 부상도 생기고…. 그런데 승부의 세계를 떠나긴 싫었죠. 그때 다가온 게 골프입니다. 산과 들, 자연 속에서 라운드한 뒤 오는 상쾌함, 그리고 샷에 집중해 목표로 한 타수를 칠 때의 성취감은 농구와 축구를 하며 얻는 즐거움과는 좀 달랐어요.”

골프의 운동량은 농구 축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 부총장은 “골프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고 하면서도 “자연과 함께 하며 신중하게 샷 하나하나에 집중해 플레이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특히 골프는 심신이 조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농구 등 단체 스포츠와 달리 내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반응하며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훈련하고 결과에 만족하는 게 골프의 매력”이라고 했다.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이 수원캠퍼스 농구코트에서 골프 드라이버로 농구공을 치는 포즈를 취했다. 어릴 때부터 농구 축구를 즐기던 그는 10여년 전부터 부상을 줄이기 위해 골프에 집중해 ‘핸디3’의 고수로 거듭났다. 수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영국에서 대학 때까지 골프 선수를 하다 금융계에 몸담은 분과 골프를 자주 치는데 그분의 플레이에선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어요. 골프장에 와서 준비하고 샷 하나하나 신경 쓰는 모습에서 철저함이 묻어났죠. 주위에 보면 대충 치는 사람들도 있어요. 골프는 예절을 지키며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정신수양 스포츠입니다.”

사실 최 부총장은 1990년대 중후반 캐나다 워털루대에서 유학할 때부터 골프를 쳤다. 그즈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등장해 미국프로골프(PGA)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등 잘 나갈 때였다. 골프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친구들과 필드에 나갔다. 하지만 농구와 축구가 있어 골프 ‘진심’은 아니었다. 귀국해서도 농구와 축구를 하느라 골프는 꼭 나가야 하는 자리에만 나갔다.

“10여 년 전 고등학교 동기들하고 저녁 먹고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 농구코트에서 농구를 하는 객기를 부리다 친구 한 명의 다리가 부러졌죠. 그때부터 ‘우리도 이젠 조심할 나이’라고 생각해 거칠지 않은 운동을 찾았죠. 처음엔 트레킹이나 산책을 했는데 골프가 산과 들을 걸으면서 하는 스포츠잖아요. 이거다 싶었죠.”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이 수원캠퍼스 농구코트에서 슈팅 포즈를 취했다. 수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다시 승부욕이 발동했다. 그는 “난 골프에 진심인 자칭 고수들과 자주 친다. 내기도 하지 않는다. 골프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멀리건, 퍼트 OK 등 전혀 없이 속칭 ‘PGA 룰’로 친다. 최 부총장은 지인들과 ‘승죽회(승리에 죽고 사는 모임)’를 만들었다. 지나친 승리 지상주의를 감추기 위해 한자로는 ‘승죽(承竹)회’로 쓰면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1년간 성적표로 연말에 우승 트로피와 배지도 준다. 최 부총장은 벌써 우승 배지 2개를 모았다.

“골프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 치는 사람도 있죠. 그래도 늘 잘 치지는 못합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요. 남자 테니스는 3~4명이 우승을 번갈아 하지만 골프는 아닙니다. 타이거 우즈도 매번 우승은 못 했죠. 저도 10년 가까이 꾸준히 치면서 최근에야 골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최재붕 부총장이 필드에서 드라이버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최재붕 부총장 제공.

최 부총장은 지난해부터 골프의 참맛을 알았고, 올 5월 13일 경기 용인 해솔리아골프장에서 생애 최저타인 4언더파 68타를 쳤다. 그는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다. 내가 지금 농구 축구로 어떻게 30대와 경쟁하겠나. 골프로는 언제든 경쟁할 수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제자들도 축구 농구는 다친다며 말리지만 골프에서는 나를 이기는 게 목표라며 열심히 도전한다. 내가 아직 젊고 생생하다는 자신감을 골프에서만큼은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트레킹과 장거리 걷기로 체력을 키우는 그는 “보직을 맡으며 연구도 하다 보니 쉽지 않다”면서도 주 1~2회 짬을 내 연습하고 주말엔 필드에 나가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최 부총장은 고등학교 때 반 대표하면서 농구 축구팀을 이끌었고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에 다닐 때도 공과대학 체육대회 때 팀을 만들어 출전했다. 최 부총장은 “가장 열심히 했던 게 농구였다. 축구도 즐기고, 매년 여름엔 지리산 종주도 했다. 교양과목 수업으로 야구를 듣기도 했다. 대학 생활을 거의 운동으로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회상했다. 캐나다에서도 그의 농구 축구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아리랑 훕스’란 농구팀, ‘아리랑 슈터스’란 축구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학교 리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교포 학생들이 ‘체육과생인줄 알았다’고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최재붕 부총장이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연구실에서 농구공을 잡고 캐나다 유학시절 농구 축구를 즐기던 얘기를 하고 있다. 수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골프는 레슨을 받은 적이 없어요. 어울려 친 뒤 맥주 한잔하며 뭐가 잘못됐는지를 서로 얘기하는 게 ‘레슨’이었죠. 연구실에서 골프로 토론을 하기도 했죠. 한국에 와서도 레슨은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혼자 연구했고 치는 사람들끼리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저만의 스윙을 만들었습니다.”

최 부총장은 스포츠를 즐기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도 쌓았다. 캐나다에 사는 교포들을 중심으로 농구팀 축구팀을 꾸렸는데 현지인들도 참여했다. 그는 “내가 10살 정도 많았는데도 축구 농구를 하며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됐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한 친구는 지금까지 내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농구 축구팀을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생겼고 캐나다에서도 끼를 한껏 발휘한 것이다.

최재붕 부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대학동문들과 골프 라운드하며 포즈를 취했다. 최재붕 부총장 제공.

“그때 만난 친구들이 제 인생의 큰 자산이 됐죠. 사실 저도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IT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때 IT가 붐을 이뤘죠. 기계공학을 공부하면서 컴퓨터 코딩과 웹 등 IT와 친숙해졌어요. 그렇다 보니 IT 관련 책도 썼고 자연스럽게 융합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죠. IT와 융합된 미래 사회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민했고, 지금은 제가 모 신문에 디지털 관련 칼럼도 주기적으로 게재하는 전문가가 됐습니다.”

최 부총장은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평생 스포츠를 즐기다 보니 체력이 좋아 며칠씩 밤새며 책을 쓰거나 하루 10시간씩 강의해도 거뜬했죠. 병원 신세 한번 진 적이 없고, 코로나도 비껴갔죠. 체력은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가져다준 제 가장 큰 자산이라 자부합니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공부만 하지 말고 어떤 스포츠든 꼭 열정적으로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체력이 곧 경쟁력입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