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8월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과거 수업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조영철 기자, 동아DB]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스승인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88학번인 성 교수는 8월 15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윤 명예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이다. 윤 명예교수에게 수학한 성 교수는 이후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연세대 경제학부 강단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8월 22일 연세대 연구실을 찾은 기자에게 성 교수는 “윤 교수님은 제자들에게는 자애로웠지만 스스로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성품 인자해 학생들 존경”
윤기중 명예교수가 1989년 수기로 작성해 연세대 학생들에게 나눠준 통계학 강의계획표와 수업 자료. [조영철 기자]
윤 명예교수는 밀도 높게 수업을 진행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성 교수는 “통계학이 결코 쉽지 않은 학문인데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셨고, 성품마저 인자하셔서 학생들이 존경했다”고 말했다. 특히 고인은 제자들이 배움을 이어나갈 때 누구보다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성 교수는 “해외 유학과 관련해 장학금을 받게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처럼 기뻐하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윤 명예교수는 제자들에게는 자애로웠지만 스스로에게는 엄격했다. ‘구제(舊制) 박사’를 거부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1950~1960년대에는 석사학위만으로도 교수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석사학위만 보유한 경우 간단히 논문을 쓰면 박사학위를 주는 식으로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이 같은 풍조가 일반화된 상태였는데 윤 명예교수는 이를 거부했다. 고인은 “나눠주는 박사가 무슨 쓸 데가 있나.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명예교수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직후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1966~1968년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일본 문과계 대학원은 뚜렷한 학문적 업적이 없으면 박사학위를 주지 않는 관행이 있어 학위를 따지는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석사학위를 보유한 이도 소수였던 터라 한양대 경제학과 전임강사가 됐고, 이후 연세대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묵묵히 학문의 길을 걸어온 윤 명예교수는 한국통계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내고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는 등 학계에서 공헌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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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에도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해 후배 교수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이 같은 품성이 드러났다. 식사를 마친 후 한 후배 교수가 계산을 했는데 기어이 이를 취소시키고 다시 계산한 것이다. 성 교수는 “후배들이 바라는 것이 있어 그랬겠냐”며 “식사를 대접받아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나이셨는데도 본인에게 굉장히 엄격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해 5월 ‘은퇴교수의 날’ 행사에 참석해 서승환 연세대 총장에게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며 1000만 원을 기부금으로 전달했다. 윤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에게도 평소 “부정한 돈을 받지 마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후에도 이어진 학문의 길
윤기중 명예교수의 저서 ‘통계학(왼쪽)’과 ‘수리통계학’. [조영철 기자]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