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는 주가 하락 시 증권사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하고 막대한 빚을 떠안을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GETTYIMAGES]
2차전지 소재 기업 포스코퓨처엠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30대 직장인 이 모 씨의 말이다. 최근 이 씨처럼 주식투자로 손실을 입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미국의 긴축 기조 유지, 중국의 부동산 위기 등으로 글로벌 경제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세계 증시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탓이다. 이런 와중에 상당수 개인투자자는 한몫 잡겠다는 욕망으로 빚을 내 급등락이 심한 테마주 투자에 나서고 있다. 8월 들어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2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이른바 ‘빚투’에 나서는 개인투자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서 무리한 투자는 화를 부를 수 있다”며 경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세계 증시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미국 국채금리 인상, 중국 경기 부진 및 부동산 위기로 회복 국면에 접어든 줄만 알았던 증시가 또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4.355%)는 2007년 11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 수준이 됐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전망, 재정적자 증가 등 요인으로 장기채 금리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곳곳에서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8월 들어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과 국유부동산기업 위안양이 줄줄이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신용거래융자 20조 원 넘어
신용거래융자 잔고 규모가 큰 개별 종목은 역시 2차전지 관련주다. 코스피, 코스닥을 통틀어 최근 3개월간(5월 24일~8월 23일)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가장 많은 종목은 포스코홀딩스(7305억 원)였다(그래프2 참조). 포스코퓨처엠(4076억 원), 삼성전자(3772억 원), 에코프로비엠(3035억 원), 엘앤에프(2819억 원), 셀트리온(2604억 원), 에코프로(2239억 원), 카카오(2192억 원), 셀트리온헬스케어(2077억 원), 네이버(2073억 원)가 그 뒤를 이었다. 잔고 규모 상위 10개 종목 중 5개(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에코프로)가 2차전지 관련주인 것이다. 이 중 엘앤에프는 상장주식 대비 신용거래융자 잔고 비율을 뜻하는 ‘신용잔고율’이 3%를 넘는 3.36%를 나타냈다. 나머지 종목이 0~1%대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대매매 역풍 맞을 수도
글로벌 경제 여건이 악화돼 세계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으나 개인투자자는 오히려 ‘빚투’에 뛰어들고 있다. [GETTYIMAGES]
초단기 빚투인 위탁매매 미수금도 액수가 크게 불었다. 신용거래융자가 증권사로부터 30~90일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돈을 빌리는 것이라면 위탁매매는 3일간만 외상을 쓰는 것이다. 투자자가 주식 매수 대금의 최소 30%를 위탁증거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증권사가 나머지 금액을 3일 동안 대납해주는 방식이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이를 갚지 못할 경우에 발생한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유가증권+코스닥)의 위탁매매 미수금 액수는 연초 대비 3배 넘는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1월 2일 약 1930억 원이던 미수금은 8월 22일 6317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반대매매 규모는 사상 최고치를 찍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7월 14일 제출받은 ‘신용거래융자 반대매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29개 증권사에서 집행한 반대매매 합계액은 약 7919억 원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반대매매가 이뤄진 증권사는 키움증권(3313억 원)이었다. 반대매매 규모는 2021년 1조977억 원, 2022년 1조8083억 원을 기록했는데, 최근 증시 약세와 빚투가 맞물리면서 올해는 그 액수가 연간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규모도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1월 2일 194억 원이던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은 8월 22일 522억 원이 됐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10% 내외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반대매매를 당한 투자자 수와 액수는 늘어난 것이다.
“다른 투자처로 눈 돌려야”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빚투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관리를 주문했다. 이 원장은 8월 8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단기간에 과도한 투자자 쏠림, 레버리지(빚투) 증가, 단타 위주 매매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테마주 투자 열기에 편승한 증권사들의 공격적인 신용거래융자 확대는 빚투를 부추길 수 있으니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증시 유동성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주식 이외에 다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미국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고PER(주가수익비율) 종목 위주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이 한 번 더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니, 전보다 가격이 떨어졌다고 무턱대고 빚투에 뛰어 들기보다 다른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