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학살 100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그림… 100년만에 日서 공개 ‘조선인이 방화’ ‘조선인 폭동 경계’… 당시 日정부-언론이 유언비어 유포 “日정부, 조사-책임있는 조치 해야”
《“100년 가까이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 그림을 펼쳐 보겠습니다.” 26일 일본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 14m 길이의 두루마리 그림이 펼쳐지자 관람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고려박물관장은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이뤄진 조선인 학살 장면이 이 정도로 생생히 담긴 그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극심한 혼란을 틈타 재일조선인 수백∼수천 명이 무고하게 학살됐다. 그로부터 100년, 일본 정부는 여전히 당시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일본 일각에서는 “역사를 직시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에게 무차별 학살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된 그림. 1926년 일본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일본 고려박물관이 경매로 낙찰받아 일반에 공개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1923년 간토대학살 당시 일본 자경단원들이 학살당한 조선인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동아일보DB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고려박물관장(전 센슈대 역사학 교수)은 인터넷 경매로 2년 전 이 그림을 입수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조선인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군인, 경찰, 일반 시민이 공공연히 보는 앞에서 조선인을 죽이는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우물에 독 풀었다’며 무차별 학살
일제강점기인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 요코하마 등 일본 수도권 일대에 최대 규모 8.3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다음 날까지 규모 6 이상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일본 정부 공식 기록으로 10만538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수십만 명이 다쳤다. 큰 피해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면서 유언비어가 퍼졌다. 지진 당일인 1일에는 “사회주의자와 조선인 방화가 많다”, 다음 날에는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의 습격이 있다” 등의 소문이 나돌았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일본 내무상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는 ‘도쿄 부근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경계 통지를 주요 기관에 내렸다.
앞서 지진 4년 전인 1919년 3·1운동으로 한반도에 두려움과 불쾌감을 느꼈던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를 확산시켰다. 이는 민간인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무자비한 학살을 조장했다. 조선인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던 “주고엔 고주센(15엔 50전)”을 시켜 어눌하면 바로 살해하는 식이었다. 사투리가 심한 지방 출신 일본인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 日정부 “기록 없다” 책임 회피
1923년 10월 15일자 동아일보. ‘일본 사이타마현 자경단이 경찰 제지도 듣지 않고 끝끝내 남녀 100여 명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조선인이 학살당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올 6월 일본 참의원에서 야당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대표는 질의를 통해 당시 일본 정부가 각 지방에 보낸 전보 등을 제시하며 일본 정부가 스스로 유언비어를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경찰청 측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며 그동안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26일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장면이 묘사된 두루마리 그림을 보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