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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새 회의론 짙어진 ‘LK-99’… “빠른 시료 검증이 최선”[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08-28 23:39:00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 논란



최지원 산업1부 기자


국내 한 기업이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다고 주장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LK-99의 진위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한 달간 미국, 중국, 독일 등에서 재현 검증 실험이 진행됐지만 초전도성을 입증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연구를 중심으로 검증이 이뤄지던 이달 초까지는 일부 긍정적인 의견이 나왔지만, 실험을 통한 연구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LK-99 회의론에 불을 붙인 것은 16일 게재된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기사였다. 네이처는 중국과학원(CAS)과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상태연구소의 LK-99 재현 결과를 소개했다. 두 연구진은 모두 LK-99가 초전도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인 것은 ‘불순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초전도체는 극한 저온(임계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다. 일반적인 금속은 온도가 낮아지면 저항이 비례해서 낮아지는데, 초전도체는 임계 온도에서 저항이 급격히 0으로 떨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 네이처 “초전도성은 불순물 때문”

LK-99 개발사인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 게재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LK-99의 비저항(전류 흐름을 얼마나 거스르는지 측정한 물리량)은 섭씨 104.8도에서 10% 수준으로 빠르게 줄어든다. 연구진은 이런 특성을 LK-99의 초전도성으로 해석했지만 해외 연구진은 불순물의 영향이라고 봤다.

LK-99는 인산납에 구리가 첨가된 형태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LK-99를 제조하다 보면 여러 불순물이 섞이는데 네이처는 LK-99에 황화구리가 많이 섞였다고 봤다. 프라샨트 자인 미국 어배나섐페인 일리노이대 교수는 “황화구리의 상전이(相轉移) 온도가 섭씨 104도로, 이 온도 이하에서는 저항이 크게 떨어진다”며 “LK-99의 임계 온도와 일치한다”고 했다.

상전이는 특정 물질이 고체에서 액체, 기체 등으로 상(相)이 변하는 현상이다. 즉, LK-99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불순물인 황화구리의 상전이 때문에 저항이 떨어진 것일 뿐 LK-99가 초전도체라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이런 가설에 기반해 황화구리의 함량을 다르게 포함한 LK-99 샘플 2개를 제작해 비저항을 측정한 뒤 8일 ‘아카이브’에 공개했다. 그 결과 황화구리의 함량이 5%인 샘플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절연체)와 비슷한 특성을 보였으나, 함량을 70%까지 높이자 논문 속 LK-99와 비슷하게 섭씨 112도 부근에서 저항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LK-99의 비저항 특성을 결정한 것이 황화구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상태연구소 연구진 역시 이런 중국 연구진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막스플랑크 연구진은 ‘부유대역법’이라는 합성 방식을 이용해 불순물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LK-99 단결정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11일 아카이브에 공개한 논문에서 “(여러 실험을 진행한 결과) LK-99 단결정은 부도체 특성을 보였다”며 “초전도체일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 결과에 대해 국내 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는 “퀀텀에너지연구소의 관측 결과가 LK-99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순물에 의한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학술지 게재보다 빠른 샘플 제공이 중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살그렌스카 대학병원 제공

이처럼 세계 초전도 학계에서는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기울고 있지만, 일부 과학자는 “최종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제공하는 LK-99 샘플과의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국내 LK-99 검증위는 국내 7개 연구소에서 시료 재현을 진행 중이며,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시료를 제공할 경우 이에 대한 검증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다.

28일 검증위에 따르면 퀀텀에너지연구소는 8월 초 “2∼4주 후 시료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아직까지 시료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당시 회사는 국제학술지에서 LK-99 관련 논문을 심사 중으로 심사가 끝난 이후 시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초전도 학계의 한 전문가는 “연구 결과에 자신이 있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학술지 게재보다 빨리 시료를 제공해 교차 검증을 마치는 편이 향후 투자 등의 측면에서 회사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학술지 게재에 성공하더라도 추가적인 검증 결과에 따라 논문이 철회될 수도 있다. 2020년 랑가 디아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는 네이처에 상온(섭씨 15도, 100만 기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다른 연구실에서 줄줄이 재현에 실패했다. 결국 지난해 논문이 철회됐다.

디아스 교수는 올해 3월 섭씨 21도, 1만 기압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질을 다시 네이처에 공개했지만 이 연구 역시 올해 5월 중국 난징대에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에 대해 네이처는 “우려 사항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조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경달 초전도저온학회 회장(한국공학대 교수)은 “시료의 특성이 강하지 않은 경우 초전도 현상에 의한 것인지 다른 물리현상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검증 결과 따라 특허 무효 가능성도 있어
진위가 모호한 상황에서도 LK-99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건 만에 하나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실제로 개발됐다면 의학, 에너지, 물류 등 여러 산업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캐나다 출신의 핵융합 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앤드루 코트는 LK-99가 높은 전자기장과 높은 전류를 모두 견딜 수 있을 만큼 고도화된다면 최대 4조5000억 달러(약 5971조 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기초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핵융합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열어 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인공 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은 초전도체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핵융합 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성비’인데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구현될 경우 적은 비용으로 많은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

상온에서 전기저항이 0이기 때문에 전력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도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21년 전력 손실은 전체 발전량의 3.53%로, 손실액은 약 2조7400억 원이었다. 초전도체의 강한 반자성 효과(마이스너 효과)를 이용하면 둥둥 떠서 이동하는 자기 부상 열차를 개발할 수 있다. 초전도체는 강한 자석을 만나면 물질 내부에 있던 자기장을 외부로 밀어내며 자기 부상을 한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현재 국내 특허청에 LK-99와 관련한 4건의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이 중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 1건은 국제특허협력조약(PCT)을 신청한 상태로, 국내 출원일로부터 30개월까지는 미국, 중국, 유럽 등 PCT 가입국 150여 곳에서 특허를 먼저 출원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진다. 퀀텀에너지연구소의 경우 2021년 8월에 해당 특허를 출원했기 때문에 내년 2월까지는 해외 특허 출원을 마쳐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다만 향후 LK-99의 초전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특허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류승민 인베스트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향후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경우에는 경쟁 기업 등 이해관계자의 특허무효소송에 따라 특허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최지원 산업1부 기자 jw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