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제자의 흉기에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취재를 위해 기자가 현장으로 급하게 갔지만 촬영할 수 있었던 건 과학수사대원들의 뒷모습뿐이었다. 대전=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송은석 사진부 기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CCTV가 사건 현장을 기록하기도 한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의 범행 장면을 포착한 건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설치된 CCTV 영상이었다. 스너프 필름처럼 가해자가 피해자를 칼로 수차례 찌르는 영상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넷상에 퍼졌다. 과거엔 음성적으로 고어 사이트에나 공유됐을 법한 장면이었다. 특히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1분 이내 ‘쇼트폼’이 유행하면서 이런 영상물의 확산은 가속화되고 있다. 쇼트폼은 사용자가 영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임의로 재생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 외에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도 있다. 먼저 유족과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며 영상을 시청한 이들에겐 간접적인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기자도 일 때문에 반복 재생하던 이태원 참사 영상에서 인파에 깔려 괴로워하던 한 여성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중에 합동분향소에서 영정 사진으로 그녀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제일 큰 문제는 이런 영상들이 사회적 불만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모방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신림역 사건의 범인도 범행 전 ‘홍콩 쇼핑몰 흉기 난동 사건’ 영상을 검색한 사실이 밝혀졌다. 영화나 소설 같은 허구가 아닌 실제 범죄 장면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란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 이런 문제로 누리꾼들도 범죄 영상을 올리지 말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론 입장에선 일반인들이 촬영한 사건 사고 영상들은 양날의 칼이다. 이런 영상들은 언론이 독자들에게 뉴스 형식으로 전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도 윤리 차원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의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흥미 위주의 보도는 하지 않아야 한다. 또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받을지도 모를 상처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된 독자와 시청자들이 더 ‘강한 맛’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있다.
유해하지 않은 사실을 선별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던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소셜미디어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silver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