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 등장한다. 화가의 젊은 연인 마리테레즈 발테르를 그린 ‘팔짱을 끼고 앉은 여인’(1937년·사진)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훗날 실현한 핵폭탄 구상에 영감을 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도 오펜하이머는 피카소 예술에 영감을 받았을까?
오펜하이머의 전기 작가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에 따르면, 오펜하이머의 부모는 뉴욕의 큰 아파트에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었다. 여기엔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림인 ‘어머니와 아이’도 포함된다. 피카소 외에도 렘브란트 판레인, 빈센트 반 고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시대를 앞선 예술가들의 작품을 오펜하이머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랐다. 이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그의 어머니 엘라가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화가이자 안목 있는 컬렉터였던 덕이 컸다. 영화에 나온 피카소 그림은 파리 피카소 박물관 소장품이다. 실제로 오펜하이머가 파리에 가서 이 그림을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여러 예술 작품들이 과학자로서 창조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크다.
그림 속 발테르는 17세 때 45세의 유부남 피카소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그림은 28세의 발테르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은 모습을 담고 있다. 원근법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묘사는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여러 각도에서 본 인물의 모습을 한 화면 안에 보여주는 입체파의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