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金 꿈 이루려 전역한 우희준 육상-치어리딩-회사원 등 경험 다양 인도 여행때 카바디 해보고 푹 빠져. 2016년 부산 亞선수권 금메달 도와 2018년 亞게임 5위… “이번엔 우승”
여자 카바디 국가대표 우희준이 13일 부산 강서구 대한카바디협회에서 상대 선수를 손으로 터치하는 공격 자세 시범을 보이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 왼쪽 레이더(공격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우희준은 날렵한 몸놀림이 강점이다. 부산=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세상에는 ‘자기소개서’ 전형은 쉽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이들이 있다. 여자 카바디 국가대표 우희준(29)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일단 ‘취미와 특기’부터 확실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하던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우며 순발력을 키운 우희준은 초등학교 시절 육상 허들 선수로 뛰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 스포츠 치어리딩 선수로 변신했다. 고교 재학 중에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세계치어리딩대회 출전 경험도 쌓고 영어 실력까지 키우고 돌아왔다.
고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수시 모집과 한국관광공사 입사 시험에 동시 합격한 우희준은 한국관광공사 역사상 첫 고졸 사원이 되는 길을 택했다. 입사 후 6개월간 통역 업무를 하던 우희준은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어 사표를 내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인도에서 카바디를 만났다. 우희준은 “인도 아이들과 함께 길바닥에 분필로 선을 그어 코트를 그리고 카바디를 해봤는데 ‘이 종목이라면 내 장기인 순발력을 살려 국가대표까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희준은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산에 있는 카바디협회에 연락해 ‘그렇게 좋으면 와서 한번 배워보라’는 답을 얻어냈다. 그러나 카바디는 순발력만 좋다고 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다. 카바디를 시작하고 2년 만인 2015년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의 근력 훈련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벤치프레스를 할 때 덤벨을 하나도 얹지 않은 바(20kg)조차 들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등장할 차례다. 우희준은 1년 동안 ‘쇳덩이’를 들고 또 든 끝에 벤치프레스 무게를 60kg까지 늘렸다. 근력이 뒷받침되면서 키(172cm)에 비해 긴 다리(110cm)를 이용한 ‘백킥’도 위력을 더욱 발휘하기 시작했다. 우희준은 한국 여자 카바디 대표팀의 2016년 부산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 획득을 도왔다. 한국이 이 대회 여자부에서 우승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6년 울산대에 입학한 우희준은 2018년에도 카바디 국가대표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올랐다.
카바디 알리려 미스코리아 참가… 레바논 파병 경험도 우희준은 비인기 종목인 카바디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참가해 선(善)에 뽑혔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은 학군장교(ROTC)로 임관한 우희준이 유엔평화유지군 통역 장교로 지난해 9월 레바논에 파병 갔던 당시 모습. 우희준 선수 제공
우희준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아버지가 경찰 동료들과 플래카드를 만들어 영상통화로 응원해 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메달을 따지 못했을 때는 아버지가 나보다 더 아쉬워하셨다”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 아버지의 목에 걸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카바디, 상대 터치후 복귀하면 득점
카바디는 인도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아비마뉴 왕자가 적군 7명에게 포위 당해 전사했다는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한 팀의 출전 선수가 7명이다. ‘카바디’는 힌디어로 ‘숨을 참는다’는 뜻이다. 레이더는 상대 진영에서 계속 ‘카바디, 카바디…’라고 소리를 내야 한다. 이 규칙을 어기면 상대에게 점수(1점)와 공격권까지 내준다.
아시안게임에서는 1990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정식 종목이 됐다. 한국 남자 카바디 국가대표팀은 2014년 인천 대회 때 동메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 카바디는 아직 아시안게임 메달이 없다.
부산=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