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 러시아 의회는 언론 자유를 크게 흔드는 형법개정안 하나를 통과시킵니다.
법안에 따르면 러시아 군대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거나 군인을 비하할 경우 최대 3년 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허위 정보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 15년 형까지도 가능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시 ‘공격’, ‘침공’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1년에 두 번 정부의 경고를 받은 언론사는 강제로 폐쇄될 수 있습니다.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이었지만 의회에서는 어떠한 토론도 없이 통과시켰습니다. “언론이 러시아가 피비린내 나는 침략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사회에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만 이어졌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즉각 서명했습니다.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권위주의 체제인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상적인 언론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러시아에서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금지됐고, 틱톡에는 영상을 올릴 수 없습니다. 다른 소셜미디어도 대부분 차단된 상태입니다. 넷플릭스 등 OTT도 스트리밍이 중단돼있습니다. 이로 인해 여전히 방송 매체에 의존하는 많은 시민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2. 멕시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018년 대통령 취임 후 매주 기자회견을 열고 있습니다. 언뜻 언론을 통해 대국민 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그는 종종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코너를 통해 자신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뉴스와 해당 글을 쓴 기자를 거론하면서 공개 망신을 줍니다.
지난해 2월에는 자기 아들이 멕시코 국영 석유 회사와 수천만 달러를 거래한 한 기업 임원 소유의 고급 저택에 살고 있으며, 임대차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부패 척결을 앞세워 지지를 얻었던 중도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 대통령에게는 무척 뼈아픈 기사였습니다.
지난해 2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정례 언론 기자회견에서 자기 아들과 관련한 비리 의혹을 제기한 기자의 소득을 공개하고 있다. 멕시코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 기자회견 다음 날 레이바 앵커는 집에서 약 18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오토바이를 탄 무장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차량이 방탄유리로 제작돼 무사했지만 레아바 앵커처럼 멕시코 언론인은 신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멕시코에서 피살된 언론인의 숫자는 무려 15명에 달합니다.
● 언론 장악 욕구는 권력의 본성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나 아프리카·중동의 독재 국가에서 언론 탄압은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지난해 568명의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수감된 언론인이 106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란은 수백만 개의 웹사이트를 차단하며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인터넷 검열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의회 건물 밖에서 집권여당의 언론통제법 추진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러시아식 악법에 반대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유럽연합 등에서 거센 비판을 받자 조지아 집권당은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물러섰다. 트빌리시=AP 뉴시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측근의 언론 소유를 강화했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언론의 약 80%를 총리 측근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들 언론사는 정부를 지지하고 반대 세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하면서 오르반 총리의 4연임을 도왔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의 선출직 지도자들이 비판 언론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매체를 강화하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쇠퇴와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정권마다 돌고 도는 ‘K언론 잔혹사’
K정치에서도 불과 2년 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이 강행 처리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법안에 따르면 허위·조작 보도를 했을 때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고, 기사에 지목된 당사자가 인터넷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등 언론의 비판 보도를 크게 제약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 최대 국제 언론 기구인 국제기자연맹(IFJ)은 당시 성명을 통해 “이 법안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오보에 대해 과도한 처벌 규정이 있어 한국 기자 사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국회 입법조사처도 “언론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로 규정한 (해외)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죠. 그럼에도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에서 야당의 반대를 뚫고 기립 표결할 정도로 법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21년 8월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반발에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당시 범여권 의원들이 법안 찬성을 표시를 위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위원장석으로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국회방송 화면 캡처
국내·외 비판 목소리가 커지면서 법안 처리는 끝내 좌절됐지만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KBS, MBC를 완전히 장악하고자 보수 정권에서 임명된 두 언론사 사장을 차례로 해임했습니다. 이후 방송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편파 방송을 일삼았던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등 친민주당 성향 인사들이 뉴스 진행자로 대거 발탁돼 사실상 어용 방송을 이어갔습니다.
● 자유 수호한다던 尹 대통령… 앞장서 언론 공격
비슷한 일은 윤석열 정부에서 또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었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이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시절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장악 공작을 주도한 의혹이 제기됐고, 한국기자협회 조사에서 언론인 80.3%가 임명을 반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후보자는 “언론은 장악될 수도, 또 장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라면서도 “과거에 선전·선동을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 신문과 방송을 우리가 언론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공산당 신문과 방송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념 적폐 청산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최근 언론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도 한껏 날이 서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언론도 지금 전부 야당 지지 세력들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4월 신문의 날 기념대회에 참석해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심을 가장 정확히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과 쓴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의힘 연찬회에 간 대통령과 이때의 대통령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지경입니다.
28일 인천 중구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오른쪽 주먹을 쥐고 ‘국민의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언론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인천=뉴스1
올해 5월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4단계 떨어진 47위 기록했습니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입니다. 언론자유도 하락은 단순히 언론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언론에 대한 탄압은 다른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은 왜 나아지지 않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두 번씩 취재하며 가진 의문에 대해 해외 정치와 비교하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의 품격을 높일 해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empty@donga.com으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