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지난달 15일 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사진)는 세계 최초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계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과학자입니다.
190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두뇌와 부유한 집안 환경 덕에 학문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1922년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를 3년 만에 마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을 거쳐 독일 괴팅겐대에서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교수가 된 그는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습니다. 한편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지만, 친동생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맨해튼 계획에 합류하기도 전부터 사상을 의심받았고, 훗날 경쟁자에 의해 소련의 첩자로 몰리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적국인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만들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그의 능력이 필요했던 미국 정부는 1942년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오펜하이머를 불러들입니다. 미 육군 휘하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직접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론과 기술 분야의 최고 책임자는 오펜하이머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끝끝내 버티던 일본을 원폭으로 항복시키고 태평양전쟁을 끝냅니다.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 개발에도 성공하자 반핵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던 오펜하이머는 소련의 첩자라는 음해를 받고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립니다. 결국엔 무죄로 판명되지만 국가 안보상 위험인물이라는 이유로 모든 공직에서 쫓겨납니다. 1962년 영국 왕립학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63년에는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67년 후두암으로 생을 마칩니다. 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된 건 죽고 나서도 한참 후인 2022년입니다.
지난 역사에 주어진 정답은 없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아니었어도 원자폭탄은 누군가 만들었을 겁니다. 원자폭탄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실제로 본 인류는 역설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군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가 핵으로 위협을 일삼고, 심지어 미국과의 핵무기 감축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이 위험한 무기가 인류 앞에 떨어진 숙제라는 걸 절감합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