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내 수중에 엄청난 돈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을 구매할 것이다. 엄청난 돈이란 말 그대로 엄청난 액수다. 물빛이 반사되는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한 남자와 물 밖에서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남자가 산을 등지고 서 있는 이 그림은 2018년 9000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까지 살아있는 예술가의 그림 중 가장 비싼 그림이다. 나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별장과 수영장이 떠오른다.
잠원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함께 어울린다. 나와 같은 외국인도 있고, 커플도 있고, 친구들 무리도 있고,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풀장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멋지게 조각된 몸을 태우는 주변의 보디빌더도 있다. 몸매가 어떤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를 포함해 그런 사람이 대다수다. 거기에 가면 바깥에선 점잔 빼는 한국인들도 모르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상냥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게다가 그곳에선 한국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을 입은 사람을 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굳이 불경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햇볕이 피부에 닿지 않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입고 풀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국의 수영장과 해수욕장의 풍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실내 수영장에 가거나 집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1970년대 한국의 해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거기엔 많은 사람이 수영복이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물에 들어갈 때 옷을 입게 된 걸까? 우리는 서로의 피부를 보면서 인간이라면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굳이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잠원동의 수영장에는 나처럼 혼자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가끔 나 같은 외국인도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알려진 남자 배우도 혼자 오는데, 여느 일반인처럼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쉬고 마음껏 수영하다가 돌아간다. 그리고 수영장에는 끊임없이 혼잣말하는 사람도 있고, 태양을 어깨에 짊어진 채 수영장 끝에서 끝까지 쉬지 않고 반복해서 헤엄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다르게 대하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를 두고 불안해하거나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공공 수영장에 가는 우리 모두는 야외 수영장에 가기 위해 차려입고 고급 호텔에 가지 않고도 하루 종일 햇볕 아래에서 여유와 더운 여름의 공기와 시원한 풀장을 만끽한다. 한강변의 나무에선 매미가 필사적으로 울고 있고 그 나무 아래 그림자에 드러누워 있다가 더위가 습격할 때마다 깨끗한 풀장에 몸을 던진다. 돈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주변인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함께 마음껏 어울릴 수 있는 공간. 이것이 바로 진정한 도시의 모습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