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아파트 일조시간 6시간 넘어 2000년대 들어 6시간 미만으로 감소 “판상형이 남향 배치-채광 등에 유리”
요즘은 이사할 집을 구할 때 먼저 챙겨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체크 리스트’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햇빛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남향인지, 주변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는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채광만큼은 현장을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채광과 관련해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보다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가 더 좋다는 ‘속설’이 있는 것 아시나요? 이번 부동산 빨간펜 주제는 ‘채광’입니다.
Q. 정말로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가 볕이 잘 드나요?
“마침 최근에 이 속설을 확인해볼 수 있는 측정 결과를 내놓은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GS건설의 1호 사내벤처였다가 지난해 3월 분사한 스타트업 인디드랩이죠. 1980년 이후 지어진 서울 아파트 약 160만 채에 대해 1년, 즉 8760시간 동안 해의 위치와 인근 지형, 건축물 등을 바탕으로 일조시간을 측정한 결과를 최근 내놓은 것인데요.
일조 시간이 가장 긴 아파트는 2009년 지어진 273채 규모 서울 중구 남산센트럴자이와 2004년 준공된 2104채 규모 관악구 관악푸르지오아파트였습니다. 가장 볕이 오래 드는 곳은 하루 평균 9시간 59분 동안 들어온다고 하네요. 아파트 2채 중 1채(47.5%)는 일조시간이 하루 6시간 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입니다. 아파트 남쪽이 저층 건물이 있는 구시가지인 점, 인근 지역과 높이 차가 20m가량으로 큰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Q. 왜 예전 아파트가 일조시간이 더 긴 건가요?
“아파트 배치계획이 그동안 바뀌어왔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기 아파트는 방과 거실이 옆으로 나란히 있는 판상형 모양입니다. 쉽게 말해 아파트 단지가 ‘一’자 모양이죠. 이렇게 지으면 같은 규모로 아파트를 지을 때 다른 모양보다 남향인 집을 더 많이 배치할 수 있게 됩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1971년),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1978년) 등이 대표적입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주상복합이 등장하며 탑상형(타워형)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2002년)를 기점으로 목동 현대하이페리온(2003년), 대치동 동부센트레빌(2005년)에서 성동구 성수동1가 갤러리아포레(2011년), 최고 56층인 이촌동 래미안첼리투스(2015년)로 이어집니다. 건물 외관이 세련되고 전체 대지 면적에서 건물 면적을 늘리기 최적화된 구조이지만 남향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도 아파트를 지어야 해 판상형보다는 일조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Q. 아파트 중에도 일조권 문제를 겪는 곳이 있다는데 맞나요?
“그렇습니다. 일조권은 주거 환경에 직결되는 만큼 한국에서는 건축법 시행령에 건축물을 지을 때 지켜야 하는 일조 관련 조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조권 침해로 인한 갈등을 미리 방지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조항은 땅의 용도가 준공업 또는 상업지역인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신축 건물이 들어설 때 새로 짓는 건물의 높이나 채광창, 건물 간 거리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주거지역’인 경우와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비주거지역에서 일조권과 조망권 훼손으로 갈등이 벌어지는 일이 잦습니다. 최근 한 시행사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상업지역에 있는 주유소 부지를 매입해 오피스텔을 지으려 했지만 바로 옆 주상복합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사업이 멈췄습니다. 준공업지역에 있는 한 아파트 옆에 있던 공장 부지가 지식산업센터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건축계획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공장이나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 들어선 ‘나 홀로 아파트’도 일조권 보호의 대상일까요? 이미 건물을 짓고 입주할 때부터 주변에 높은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다는 걸 감안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반면에 사실상 주거지역이니 그에 준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겠죠. 최근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준공업지역 등 비주거지역을 활용하겠다는 정책이 계속해서 거론되는 만큼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빨간펜’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