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에 데뷔해 14년 간 틴탑 멤버로 살았던 방민수. <복수자들> 캡처
“아이돌은 무대에서 춤 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지
적어도 팬들과 ‘유사연애’하는 직업은 아닙니다.”
‘유사연애’는 가상의 인물에게 연애 감정을 갖고 상상으로 연애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아이돌 업계에서 유독 많이 언급되는 말이죠. 아이돌 그룹 틴탑의 전 멤버 방민수 씨는 K팝 아이돌 팬덤이 ‘유사연애’를 강요하는 문화 때문에 병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적어도 팬들과 ‘유사연애’하는 직업은 아닙니다.”
그는 19살에 아이돌 그룹 틴탑의 리더 ‘캡’으로 데뷔해 14년간 아이돌 멤버로 활동하다가 올 5월 그룹에서 탈퇴했습니다. 아이돌 탈퇴 후 화가로 활동하는 그는 틈틈이 예초(刈草·풀 베는 일)도 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연예기획사의 유사연애 비즈니스, 사생팬과 유사연애로 대표되는 팬덤의 실체 등에 대해 가감 없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복수자들〉이 그를 만나 ‘아이돌 14년의 삶’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이돌과 팬의 유사연애를 조장하는 연예 기획사의 상술, 아이돌에겐 공포 그 자체라는 사생팬 문화, 아이돌 내 비인기 멤버의 설움 등을 다뤘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기웃기웃’에서 인터뷰 영상(https://youtu.be/I9JhIwCE4gY?si=QgKubE8BLRuwW2ws)을 볼 수 있습니다.
‘유사연애’로 대표되는 K팝 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해 비판하는 방민수.〈복수자들〉 캡처
아이돌 활동 시절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팬들과의 ‘유사연애’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이돌에게 연애감정을 느끼는 팬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위해 연예 기획사에서는 유사연애를 유도하는 서비스나 행사를 기획합니다. 팬이 스타에게 느끼는 연애 감정을 이용하는 건 연예 산업의 고전적인 비즈니스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이돌 업계에선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아이돌과 연애하는 것 같은 환상을 구입하기 위해 기꺼이 거액을 지불합니다. 스킨십이 허용되는 아이돌 팬 사인회, 실시간 영상을 통한 아이돌의 사생활 공개, 아이돌 멤버와의 가상 온라인 채팅 등이 대표적입니다.
‘팬덤 비즈니스’로 유지되는 K팝 아이돌 산업. 연예 기획사는 아이돌 팬덤을 강화하는 상품, 행사 등을 기획함으로서 돈을 벌어들인다. 게티이미지뱅크
“팬덤 덕분에 아이돌이 돈을 버는 게 맞지만 아이돌은 극성 팬덤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극성 팬덤을 조장하고 이를 방조하는 회사의 태도가 제일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음반에 멤버별 포토카드를 넣어서 판매하는 게 대표적인데요. 팬 한 명에게 CD 여러 장을 팔려고 하는 수법이에요. 일부 극성 팬들은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 음반 구입에만 수십, 수백만 원을 쓰게 됩니다. 돈을 많이 쓴 일부 팬들은 ‘나는 이만큼 소비를 했으니까 (아이돌 멤버에게 유사연애를 강요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BTS 같이 유명한 아이돌한테는 별로 해가 되진 않아요. 전체 팬덤이 많으니 극성 팬들의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거든요. 문제는 인기가 정점에 있는 아이돌이 아니라 하락세에 접어든 아이돌입니다.”
―아이돌의 인기가 떨어질 때 ‘유사연애’ 폐해가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팬이 1만 명 있을 때랑 100명 남았을 때를 가정해보세요. 100명의 극성 팬들은 전체 팬덤이 1만 명이었을 때나 100명만 남았을 때나 쓰는 돈의 액수는 같거든요. 1만 명 있을 때는 소수였기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면 자신들이 다수가 된 후에는 목소리를 점점 키우는 거죠. 인기가 떨어진 아이돌에게 ‘너희 나 없으면 안 되잖아. 나 너희한테 이렇게 돈 많이 썼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너희들은 나 없으면 뭐가 되겠냐’고 권리를 주장하는 거예요.”
유사연애로 시작한 팬덤이 어느 순간 선을 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사생팬(연예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극성팬을 이르는 말)의 스토킹 범죄가 대표적입니다. 사생팬에게 스토킹을 당해도 가벼운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돌이 많습니다. 범행 강도가 웬만큼 심하지 않고서야 팬들을 고소·고발한다는 것이 아이돌에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생팬들의 스토킹 피해는 일상적으로 겪는 아이돌. 게티이미지뱅크
“데뷔 초반부터 사생팬들이 있었어요. 집 앞에서 새벽 3~4시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새벽이라 얼굴도 안 보이는데 불쑥 찾아와선 편지랑 선물을 건네는 거죠. 소름 끼치게 놀랐어요. 저는 처음부터 사생팬들을 보면 제발 오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욕도 하고 그랬어요. 당하는 입장에서 스토킹은 정말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에요. 휴대전화번호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르는 번호로 전화, 문자 오는 건 일상이고요.”
―집 주소, 휴대전화번호는 개인정보잖아요. 어떻게 알고 접근하는 걸까요?
“아이돌 개인정보를 거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아이돌이 해외 공연 간다고 공항에 가잖아요. 스케줄을 공개하지 않으면 비행시간을 알 수가 없거든요. 근데 저희가 해외 나갈 때마다 소수의 팬들은 항상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팬들에게 아이돌 비행 정보를 돈 받고 파는 공항 관계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연예 기획사에는 직원이 많잖아요. 매니저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직군의 직원들. 그 사람들도 팬들한테 돈 받고 집 주소나 휴대전화번호를 넘긴다고 하더라고요. 비공개 스케줄을 통째로 판매하는 분도 있고요. 아이돌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범죄나 다름 없죠.”
14년간 아이돌로 살면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틴탑에서 ‘비인기멤’이었다고 합니다. 미인기 멤버를 칭하는 ‘비인기멤’은 아이돌 그룹 내에서 인기가 없는 멤버를 의미합니다. 여러 명의 다양한 멤버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에선 멤버별로 팬덤의 차등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비인기멤이 된 아이돌은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상처를 받는다고 합니다. 방민수는 활동 당시 주로 선글라스를 착용했는데, 아이돌 활동에 적응하지 못한 그가 카메라 렌즈나 타인의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틴탑 활동 시절, 방민수의 모습.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인기가 없었어요. 다른 멤버들이 저보다 훨씬 잘 하기도 했지만 저는 처음부터 유사연애 못 하겠다면서 행동도 ‘아이돌 답지 않게’ 한 거죠. 팬이 없는 것까진 괜찮은데 다른 멤버를 좋아하는 팬들이 저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게 힘들었어요. ‘너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멤버가 잘 나가지 못한다’ ‘너 때문에 틴탑이 뜨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면서요. 팬 사인회 같은 데서는 대놓고 싫은 티를 내요.”
“팬 사인회 같이 팬들이 참여하는 행사죠. 팬 사인회에서는 원하는 멤버들을 골라서 사인을 받을 수 있거든요. 팬 사인회 때 대부분의 팬들이 저는 보통 건너뛰고 싶어했어요. 팬들 표정에서도 저를 싫어하는 게 다 보이잖아요. 그러다보니 팬 사인회 같이 팬 만나는 행사는 아예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속없이 웃어주고 싶지도 않았고요.
같이 활동하던 시기 친하게 지냈던 걸그룹 멤버가 한 명 있었어요. 그 친구도 그룹에서 비인기멤이었거든요. 군부대 행사를 갔는데 사인회를 했대요. 사인 받고 싶은 멤버한테 줄 서라고 했는데 그 친구한테는 1명도 안 선 거예요. 뒤에서 군 간부들이 군인들한테 ‘야, 저기 가서도 사인 받아, 인마’ 그랬는데 그게 더 상처였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 하면서 엄청 울더라고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상황인데도 (팬들 앞이기 때문에) 웃고 있어야 해서 너무 괴로웠다고요.”
―자격지심을 느껴서 틴탑을 탈퇴했다고 개인 방송에서 고백하셨는데요.
“비인기멤으로 계속 살다보면 설움의 연장선으로 자격지심이 따라와요. 사람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아를 찾아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저는 주변 멤버들과 저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어요. 틴탑에서 저는 항상 꼴찌였어요. 자격지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정신적으로도 많이 취약해졌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의 괴리를 느낄 거예요.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걸리는 아이돌도 많고요. 저 같은 경우는 스스로 싫어하는 행동을 억지로 해야 했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어요. 집에 혼자 있을 때 빼고는 전부 불행했어요. 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어하는 행동을 ‘아이돌이기 때문에’ 억지로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어요. 스스로를 잘 모르는 어린 나이에, 아이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일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데뷔한 제 잘못이 컸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그만두게 된 거예요.”
아이돌을 그만두고 화가로 활동 중인 방민수. 유튜브 캡처
아이돌을 그만두고 틈틈이 예초 작업을 하며 돈을 버는 방민수. 유튜브 캡처
―아이돌을 그만둔 지금은 행복하신가요?
“돈은 훨씬 못 벌지만 행복합니다. 아이돌 때 공연 10여 분 하고 내려왔을 때 벌 수 있는 돈이 몇백만 원이었다면 예초는 2~3시간에 30만 원 벌거든요. 근데 저는 그 돈이 훨씬 가치 있고 괜찮다고 느껴질 수 정도로 아이돌 활동이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이 왔기에 포기할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포기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행복해요. 저는 아이돌 문화와 생활을 견디지 못해서 나왔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건 14년 동안 열심히 일해 온 덕분이기도 하잖아요. 과거의 불행했던 일로 후회하지 말고 지금 행복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