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군 검찰로부터 강제 구인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가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1일 기각됐다. 박 전 단장이 군 수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이유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군 검찰이 내놓은 그의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단장에 대한 군 검찰의 영장 청구는 애초 무리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사안은 지난달 그가 고(故) 채 상병에 대한 수사 결과 보고서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대면보고, 결재받은 뒤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결재 다음 날 군은 ‘이첩 대기’를 지시했고 예정됐던 결과 브리핑을 불과 1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단장이 보고서를 예정대로 경찰에 넘기자 군은 그를 곧바로 보직 해임하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이후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으로 혐의를 변경해 인신 구속을 시도하면서 그를 영장실질심사에 강제 구인했다. “입막음 시도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처리 방식과 속도였다.
박 전 단장을 둘러싼 논란은 군을 넘어 대통령실 개입 의혹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VIP’가 회의에서 격노했다고 들었다는 박 전 단장의 진술서 내용 일부가 공개되면서 외압 의혹을 밝히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 속에 정치권의 정쟁화 움직임도 이어지는 중이다. ‘항명이냐 외압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만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차분히 추가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 군 검찰의 성급하고 거친 대응은 되레 역풍만 키운 결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