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사…’ 출간 “박정희 제거, 美와 김재규 합작품 표면적으론 독재로 인한 인권 침해… 본질적 이유는 韓 핵무기 개발 시도”
1979년 10월 13일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는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을 언급하며 “최근 몇 주간 나는 이러한 사건들로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완범 교수는 “이 메시지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중대한 압력이었다”고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1979년 10·26사태 한 달 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926∼1980)를 만나 ‘정권 교체’를 논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대사가 유신 정권 교체를 구두로 명백하게 내비쳐 시그널을 보낸 겁니다.”
이 교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관련 기밀문서가 비밀에서 해제된 200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10·26사태 미국 배후설의 실체를 추적해 왔다. 최근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사 연구’ 1∼3권(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을 출간한 이 교수를 2일 화상으로 만났다. 총 6권으로 기획된 이 책은 1945∼1987년 한국 최고 지도자를 교체하거나 제거하려 했던 미국의 시도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1∼3권의 부제는 ‘박정희 제거공작편’이다.
당시 전문에는 “나(글라이스틴)는 김재규나 누구에게 박정희의 제거를 용인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한 내용도 나온다. 이 교수는 “외교 분쟁이 일어날 수 있었기에 글라이스틴은 발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전문 자체가 김재규와 만난 사실을 숨기다가 뒤늦게 발각되면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입장을 바꾼다. 그는 회고록에서 10·26사태를 언급하며 “(미국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공헌했다”며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과 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박 전 대통령의 몰락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10·26사태에 미국의 힘이 작용했음을 우회적으로 기술한 회고”라며 “외교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이 정도가 미국 측 핵심 인사가 남길 수 있는 최대한의 고백”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박정희 정권 교체를 원한 까닭은 뭘까. 이 교수는 “표면적으론 독재로 인한 인권 침해였으나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 시도”라며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한국 최고 지도자를 교체하거나 제거하려 했다”고 했다.
책 4∼6권 ‘전두환 제거공작편’은 올해 말 출간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다음 편에 관해 “미국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전두환을 끌어안고 있다가 5·18민주화운동 같은 일이 재발하고 한반도에 소요 사태가 지속되면 북한이 쳐들어와 남한이 공산화될 수 있다고 봤다”며 “전두환 제거 작전을 구상한 이유”라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