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일상으로, 공간복지 〈3〉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외벽-골목길 등 그대로 살리고 기존 건물 활용해 예산 절감 하루 2000여 명 찾는 ‘열린 공간’ 설립부터 운영까지 주민들이 참여… 자료실엔 은평 역사 간행물도 소장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로비에서 지난달 31일 주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회색, 노란색, 흰색.’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에 가면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의 건물이 붙어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연립주택 3채와 골목길을 하나의 공간으로 새 단장을 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지난달 31일 기자는 도서관마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눈에 들어온 장소는 당초 골목길이던 공간에 지붕을 덮은 도서관마을의 로비였다. 로비에는 각 주택의 옛 구조와 새로 지은 건물이 잘 조화돼 있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3층짜리 발코니, 수십 개의 창문이 달린 흰색 벽, 붉은 공중전화 박스. 김영미 구산동도서관마을 문화정책팀장은 “과거 다세대주택 외벽을 그대로 살리고 여러 채의 연립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 주택 3채와 골목길 품은 ‘열린 도서관’
연립주택 세 채와 골목길을 이어 붙여 만든 도서관에는 3층짜리 발코니 등 마을의 과거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회색, 노란색, 흰색 등 다른 건물이 하나로 이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도서관 곳곳에는 마을의 과거가 보존돼 있다. 기존 골목길은 서가가 이어진 대형 도서관처럼 꾸며졌다. 55개의 방은 시민들이 편히 독서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칸막이로 구분하고 책상과 의자를 설치한 일반 열람실과 달리 곳곳에 벤치나 탁자형 의자를 배치했다. 도서관마을 관계자는 “가끔 열람실을 증축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오면 직원들은 ‘미래 도서관에 왔다고 생각해 달라’고 설명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 구조도 독특하다. 길 중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계단이 튀어나오고, 층계를 오르다 보면 벽 재질이 붉은 벽돌에서 회색 화강암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다. 소방 자격증을 공부하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온다는 장동근 씨(57)는 “다른 도서관은 딱딱한 분위기인데 이곳은 편안하고 층마다 특색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 하루 2000여 명 방문, 강의 공연도 활발
은평구 구산동에는 초중고교 11곳이 있지만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문화시설이 없었다. 이에 2006년 5월 주민 2000여 명이 도서관을 만들어 달라는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은평구가 2008년 부지를 구입했지만 예산 문제로 미뤄지다 2012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에 선정된 후 사업이 본격 추진돼 2015년 11월 개관했다. ‘은평도서관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린 주민들이 민간 위탁 형태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현재 구산동도서관마을은 하루 평균 2000여 명이 찾는 마을 문화의 구심점이 됐다. 8만여 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에서 지난해 8만3739명이 18만1265권의 책을 빌려갔다. 인문학·여행 강의와 오케스트라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청소년 독서, 추리소설 등 동아리 17개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인근 특수학교와 연계해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만화책 1만 권 소장 지역 아카이브 역할도
1만여 권의 만화책을 소장한 이 도서관은 올 초 1층 미디어교육실 외벽을 만화로 꾸몄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낡은 연립주택에서 주민들의 커뮤니티로 거듭난 구산동도서관마을은 2019년 대한민국 공간복지 대상을 수상했다. 이순임 관장은 “옛날에는 친구를 집으로 불렀지만 이제 도서관이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는 ‘공공의 거실’ 기능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주민들의 열린 공간으로 사랑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