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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韓 교사들, 학부모 항의전화에 벼랑끝 내밀려”

입력 | 2023-09-05 03:00:00

[공교육 멈춤의 날]
교사 힘들게 하는 문화 분석 보도
“초경쟁속 자녀성공 위해 이기적 돼
부모 고학력이 교사 무시 부채질해”



“교사 죽음 더는 없게” 추모 촛불집회 서울 서이초에서 숨진 교사의 49재인 4일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공교육 멈춤의 날’로 불린 이날 서울 국회 앞과 전국 교육청, 교육대학 등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교사들은 잇달아 연가, 병가를 냈고 예비 교사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교사들은 “우리 교육은 9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외쳤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교사의 잇단 극단적 선택과 이에 따른 교사 집단행동이라는 최근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영국 BBC 방송은 초경쟁 사회와 고학력 학부모를 ‘민원 문화(culture of complaining)’와 ‘교사 무시’ 현상을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BBC는 4일(현지 시간) ‘교사의 자살로 한국 학부모의 괴롭힘이 드러났다(Teacher suicide exposes parent bullying in S Korea)’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교사들의 집단적인 ‘분노의 물결’에 주목했다. BBC는 무분별한 부모의 항의 전화와 제멋대로인 학생 태도가 교사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수업 중 폭력 성향을 드러낸 학생을 제지하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고, 꾸짖으면 감정적 학대 행위로 취급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학부모가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한 교사에게 항의 전화를 계속하는 행위를 BBC는 ‘민원 문화’라고 지칭했다. 교사 결정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교사를 귀찮게 하는 방법을 서로 알려주기도 한다면서 이 같은 민원 문화의 바탕에는 초경쟁 사회가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학생은 명문대 입학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성적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부모는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되는 ‘학원(hagwons)’이라 불리는 값비싼 과외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녀가 하나인 대부분 한국 가정에서 성공 기회는 한 번뿐으로 인식된다”며 “결국 부모는 ‘내 아이만 소중하다’고 생각해 이기적으로 변한다”고 짚었다.

또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교사를 존경하던 문화가 변화했다는 점에 주목한 BBC는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과거와 달리) 많은 부모가 고학력자”라면서 “이는 학부모들이 종종 교사를 업신여기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교사에게 (자녀 문제로) 불평할 수 있다는 강한 자격의식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BBC는 “한국에서 무너진 건 교실만이 아니다”라며 “성공에 대한 좁은 정의와 전반적인 교육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보도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