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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급류 헤쳐 초등생 형제 구한 고3들 [따만사]

입력 | 2023-09-07 12:00:00

광주 숭덕고 김어진·이세준 군



지난달 15일 전남 장성군 북하면 남창계곡에서 물놀이하던 초등학생들이 급류에 휩쓸리자 구조한 광주 숭덕고 재학생 김어진(왼쪽)·이세준 군. 장성경찰서 제공


지난 8월 15일 오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광주 숭덕고 학생 김어진 군(18)과 이세준 군(18)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마친 후 다른 친구 2명과 함께 전남 장성군 북하면 남창계곡으로 향했다. 무더운 더위를 피하고자 워터파크를 갈까도 고민했지만, 고3인지라 근처 계곡을 찾았다.

이들은 컵라면을 먹고 계곡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겼다. 두 시간 정도 흘러 오후 5시경 계곡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동행한 친구 2명이 마른 옷으로 갈아입을 동안 김 군과 이 군은 계곡 인근에서 짐을 챙겼다.

그때 “도와주세요”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이 군이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이 물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이가 수문에 걸린 채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것이다.

남창계곡. 장성군 제공

계곡 인근 식당 종업원이 아이를 붙잡고 물 밖으로 빼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주변 분들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군은 곧바로 계곡에 뛰어들었다. 그는 급류를 헤쳐간 뒤 종업원과 함께 초등학생 A 군(10)을 물 밖으로 빼냈다.

이 군이 A 군을 구하는 사이, 김 군은 계곡을 살펴보다 우연히 A 군 동생 B 군(9)이 급류에 떠내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형보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B 군은 수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약 2~3m 단차가 있는 배수관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B 군을 발견한 사람은 김 군과 다른 남성, 이렇게 두 명뿐이었다. 김 군은 5m가량 계곡 바위 위를 뛰어간 뒤 수영해 B 군에게 다가갔다.

B 군은 발견 당시 입술이 파랗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김 군은 B 군을 안고 물 밖으로 나왔다. B 군 아버지는 급한 마음에 아이의 구명조끼를 벗기지 않은 채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김 군은 “이러면 심폐소생술이 제대로 안 된다”며 구명조끼를 벗긴 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심폐소생술에도 B 군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A 군을 구하고 B 군을 지켜보던 이 군이 “입을 벌리고 혀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군은 닫혀있던 B 군의 입을 연 뒤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혀를 잡아 빼냈다. 이후 심폐소생술을 하자 B 군은 의식을 되찾았다.

초등학생 2명은 곧이어 도착한 소방대원에게 인계됐다. 아이들은 현재 건강을 회복해 퇴원한 상태다. 부모님은 아이들과 함께 김 군, 이 군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식당이 계곡물을 가두기 위해 사용한 물막이. KBS뉴스 방송화면 캡처

당시 사고는 계곡물을 가둔 인공 구조물의 수문(직경 35㎝)을 식당 종업원이 사전 안내 없이 개방하면서 발생했다. A 군과 B 군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수문이 열리며 일시에 빠져나가는 계곡물로 인해 생긴 급류를 피하지 못했다.

경찰은 식당 측이 남창계곡을 찾은 피서객을 대상으로 영업하기 위해 계곡물을 일부러 가두는 시설을 무단 설치·운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식당 측이 사나흘에 한 번씩 수문을 열어 물갈이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해당 식당을 운영 중인 업주와 종업원 등 2명을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막이 시설과 평상 등 시설물을 점유 허가 없이 설치한 하천법 위반 사항은 담당 지방자치단체 고발 절차에 따라 수사할 예정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B 군을 구조한 김 군은 구조 과정에서 살이 까지기도 했지만, 본인의 목숨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며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눈으로 봤을 때 B 군이 있던 곳은 급류가 심해 보이진 않아 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 군도 마찬가지다. 그는 “수영을 잘하진 못했지만, A 군은 떠내려가진 않고 수심이 깊은 한 곳에서 얼굴이 계속 물 위로 나왔다가 들어가는 상황이라 무리 없이 구조할 수 있었다”며 겸손함을 드러냈다.

두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김 군은 “심폐소생술 교육 영상을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학기 중이나 방학 중에 계속 보여주니까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며 “학교에서 직접 인형으로 실습해 본 적도 있다”고 전했다.

KIA 타이거즈의 초청으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시구에 참여한 김어진 군과 이세준 군. KIA 타이거즈 제공

김 군과 이 군은 평소에도 타인을 돕는 따뜻한 삶을 실천했다. 김 군은 “이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리어카 끌고 가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등 사소하게 도움을 드린 것뿐”이라며 멋쩍어했다. 이 군도 “마트에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 물건을 들어드리는 정도의 도움을 드렸다”고 말했다.

두 학생의 이 같은 삶에는 부모님들의 영향도 컸다. 이 군은 “부모님은 ‘네가 안전한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고 했고, 김 군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쳐주셨다”고 전했다. 다만 김 군은 “중고등학생 정도 되면 그런 가르침을 받지 않더라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으니 당연히 타인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웃어 보였다.

김 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새로운 꿈을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아직 정확한 꿈은 없지만 응급구조학과로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군은 타인을 도울 수 있으면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물리치료사를 꿈꾸게 됐다. 그는 “지난해부터 진로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여러 개 합해보니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이 나왔다.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몸 쓰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잘해서 이 직업을 희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군과 이 군은 이번 일로 장성경찰서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오명철 수사과장은 “소중한 생명을 구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위기 상황에서 침착한 구조 활동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학생은 KIA 타이거즈의 초청으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시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어진 군과 이세준 군이 장성경찰서에 표창장을 받고 있다. 장성경찰서 제공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