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2023.9.5/뉴스1 (서울=뉴스1)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으로 폄훼하고 친일·반민족자는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 찬양한다. 이게 바로 극우 본색이다.”(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치켜세웠다. 침략자를 자기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나라를 본 적이 있나.”(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여야가 5일 국회 대정부질문 첫날부터 이념 공방을 벌이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여기에 대정부질문에 나선 야당 의원들이 잇달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고, 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회의 행정부 견제’라는 대정부질문의 취지가 무색하게 서로를 향한 삿대질과 고성으로 회의장이 소란스러웠다.
● 野 “극우 사관” vs 한덕수 “야당이 이념화”
이념 공방의 포문은 야당이 열었다. 첫 질의자로 나선 민주당 설훈 의원은 “육사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 이전한다는 것은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희생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왜 독립운동가와 싸우려 드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이념이 중요하다지만 들여다보면 극우 사관”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한정 의원은 “왜 항일 독립운동을 정부가 나서서 훼손하느냐.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념 공세를 펴고 국민을 반으로 찢어놓고 갈라치고 있다”며 가세했다.
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독립운동가로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존경에는 하등 변화가 없다”며 “(야당이) 흉상 이전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이념화하고 있다”고 맞섰다.
여당도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 둬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옹호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홍범도 장군 논란은 공산당 논란이 아니다”며 “소련에 들어간 뒤 무장해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김좌진 장군과 이를 받아들인 홍범도 장군 중 육사 생도에게 어떤 리더십을 가르쳐야 하나”라고 했다.
여당은 광주에서 조성을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문제도 겨냥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정율성은) 조선인민군 군악부장으로서 북한 인민군의 사기를 북돋고, 북한군 위문공연을 수백 회 했던 사람”이라며 “어떤 나라도 침략자를 국민의 혈세로 기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날 정부의 오염수 대응 문제도 비판했다. 이에 한 총리는 “제발 문제가 있으면 과학으로 토론해 달라”며 “이것은 단순한 정치 의제가 아니고 100만 명 수산인의 생명이 달린 문제다. 어민들이 가짜뉴스에 영향받지 않도록 정말 좀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 설훈 “탄핵” 발언에 여야 고성 아수라장
설 의원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개입 논란과 관련해 한 총리를 향해 “(대통령을) 탄핵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답변하지 말고 총리 내려오세요” “(발언) 취소하라” “가짜뉴스” 등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설 의원이 계속 “윤석열 정권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탄핵하자고 나설지 모르겠다”고 발언을 이어나갔고, 여야 의원들은 서로를 향해 질문자 목소리가 묻힐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첫날부터 여야가 격한 고성을 주고받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장석에서 “초등학교 반상회도 이렇진 않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의장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데 여야 의원들이 방청석에서 국민들이 발언을 못 듣게 방해하고 있다”며 “제발 좀 경청해 달라. 초등학교 반상회도 이렇게 시끄럽지 않다”고 여야 의원들을 제지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6일째 단식농성 중인 야당 대표 손을 잡지 않으면 제가 대통령 탄핵 가장 먼저 주장할 것”이라고 재차 탄핵을 언급했다.
이날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한 총리에게 “저는 오늘 총리님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며 “ 정치는 오늘도 산업화, 민주화로 나뉘어서 싸우고 있다. 예를 들어 독재 정권의 후예와 친일 정권을 박멸하자거나 공산 전체주의와 반국가세력을 절멸하자고 한다. 수준도 또 수준이지만 남는 게 없으니까 싸움이 덧없다”고 했다. 이에 한 총리는 “합리성, 과학, 지성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고 답했다.
김준일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