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다자주의 강조하지만 美 주도 ‘IPEF’엔 자유무역 요소 부족 中, 다자협력서 영향력 키우는 상황인 만큼 일방주의 탈피해 다자경제협력체 마련해야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 후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현재 아태 지역에는 두 가지 추세가 출현했다. 하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대표로 지역 국가들이 단결·협력하는 노력이며, 다른 하나는 미·영·호주(AUKUS), 미·일·한, 미·일·인도·호주(QUAD) 등 각종 폐쇄·배타적인 패거리를 대표로 분열과 대결을 선동하는 행위”라며, “유감스럽게도 전자에서 미국의 그림자는 볼 수 없고, 후자는 모두 워싱턴을 축심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분열과 대결을 선동”한다는 중국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지역 차원의 포괄적 협력의 장에서 미국의 이름이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취임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한 것이었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아세안이 추진하는 RCEP를 지지했고 RCEP는 2013년 협상이 시작된 지 7년 만인 2020년 말 타결되었다. RCEP에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 호주를 포함해 아세안 10개국, 뉴질랜드, 그리고 중국까지 포함되어 있다. RCEP는 무역 자유화 수준이 높지 않지만 인태 지역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참가하여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다자협력체다. RCEP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9%를 차지하고 있고, 2019년 기준 중국은 RCEP 전체 GDP의 44%를 점유하고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더욱이 중국은 2021년 TPP의 후신인 CPTPP 가입 의사를 밝히며 지역 다자경제협력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다보스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우리는 다자주의의 핵심 가치와 기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했는데, 언뜻 들으면 중국이 아닌 미국의 정책처럼 들린다.
동맹 복원과 다자주의를 외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집권 1년 만인 2022년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발표했는데, 트럼프의 정책에 실망했던 인태 국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CPTPP에 참여하여 지역 다자무역 질서를 강화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CPTPP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 대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추진했다. 2022년 5월 미국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피지 등 14개국이 IPEF 협상에 참여한다는 선언을 했고 협상이 본격화되었다. 참가국들의 GDP 총합에서 IPEF는 34조6000억 달러인데 이는 RCEP의 26조1000억 달러를 훨씬 넘어선다. 이런 규모에도 불구하고 IPEF는 관세 인하, 시장 접근과 같은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의 필수 요소를 다루지 않는다. IPEF는 미국 주도의 무역질서를 추진하는 플랫폼이지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이 아니고, 의회 비준을 거치는 조약이 아니므로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미국이 인태 전략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지역 국가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포용적 다자경제협력체의 형성이고, 미국은 CPTPP와 RCEP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는 미국 일방주의의 탈피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채택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바이오 산업에서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행정명령’ 등은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로 보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흔들 수 있다. 이러한 보호주의 무역은 지역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동맹 체제마저 흔들 수 있다. 미국 기업들에만 배타적 이익을 주어 동맹과 우방국들을 실망시키는 입법들을 폐기하거나 최소한 유예 조항을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포괄적인 경제적 다자주의를 실현해야만 인태 국가로서 인정받고 자유무역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