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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희창]무늬만 역대 최저 예산 증가율… 건전 재정이라 할 수 있나

입력 | 2023-09-05 23:57:00

박희창 경제부 차장


지난달 말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강조했던 숫자 중 하나는 ‘2.8%’였다. 내년 예산 증가율로,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치라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 경제 상황, 재정 수요, 국민 기대 등을 종합하면서 건전 재정 끈을 놓지 않는 지점이 어디까지인지 검토하다가 역대 최저인 2.8%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증가율을 0%로 묶어 올해와 같은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2.8%만 놓고 보면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정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년 예산 증가율은 전 정부 5년 평균치보다 5.9%포인트나 낮다. 2005년 이후에 이보다 낮은 증가율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다 정부는 모든 사업을 재검토해 총 23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도 단행했다고 역설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은 7조 원, 보조금 사업 예산은 4조 원 삭감했다고 덧붙였다. 2년 연속 20조 원 넘는 지출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증가 폭의 단위를 원으로 바꿔보면 역대 최저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짠 내년 예산은 656조9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18조2000억 원 늘어난다. 최대 46조 원 넘게 증가하기도 했던 전 정부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적은 규모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짰던 2017년 예산 증가액보다는 크다. 2017년 예산은 전년보다 14조3000억 원 늘었다. 퍼센트(%)로 따지면 3.7%였다. 박 정부에서 예산 증가액이 내년 예산 증가액보다 컸던 건 2015년 예산안 하나뿐이었다.

전체 예산 자체가 커진 점을 활용해 역대 최저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2016년 380조 원대였던 총지출은 올해 630조 원을 넘어섰다. 같은 2.8%라도 630조 원일 때가 증가액이 더 많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통해 ‘알뜰하게 쓰면서 지키는 재정’ ‘살뜰하게 챙기는 민생’ 등 두 가지 모두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쓸 데는 쓰겠다고 자신하면서 동시에 역대 최저 예산 증가율까지 내걸 수 있었던 건 매년 예산을 크게 늘렸던 문재인 정부 덕분이기도 한 셈이다.

내년에 걷힐 세금이 크게 줄어들어 ‘쓰면서 지키는 재정’을 떠받치기 위해 빚도 낸다. 경기 부진으로 내년 국세 수입은 올해보다 33조 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입보다 지출이 45조 원이나 많은 적자 예산을 짰다. 모자란 돈은 적자 국채를 81조 원 넘게 발행해 메운다. 결국 내년 나랏빚은 올해보다 62조 원 더 늘어나 1200조 원에 육박한다. 정부는 “건전 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고 자평한다. 이 숫자들이 건전 재정을 가리키고 있는 건지 의아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했다. 재정준칙은 정부의 재정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예산안으로 내년 재정적자는 GDP의 3.9%로 불어난다. 아직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진 못했지만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것도 지키지 않았다. 정부는 23조 원이라는 지출 구조조정의 세부 내역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말만 넘쳐나는 건전 재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