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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몇 줄로 통쾌한 ‘침묵의 글’… 고바우는 국민 캐릭터였죠”

입력 | 2023-09-08 10:00:00

‘공포의 외인구단’ ‘천국의 신화’ 작가
만화가 이현세가 말하는 고바우 영감과 김성환 화백.




‘고바우가 바라본 세상’ 컬렉션 오픈 기념으로 이현세 작가(69)를 1일 서울 강남구 그의 화실에서 만났다. 작품 주인공인 ‘까치’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는 2002년 제2회 고바우만화상 수상자다. 그는 1시간의 약속된 인터뷰 시간을 넘기면서 고바우 영감과 당시의 만화계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1일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이현세 작가가 ‘고바우 영감’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이 컬렉션을 통해 김 화백의 네 컷 만화를 다시 본 느낌이 어떤가.
“무엇보다 반가웠다. 김성환 선생님이 국민만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정치 비판 뿐 아니라 다가오는 김장철, 연탄값, 담배파동 등 서민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네 컷 만화에 담아냈다. 그래서 ‘고바우 영감’은 만화로 수명도 길었고, 국민 만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현세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고바우 만화상’ 메달.

―제2회 고바우 만화상 수상자다.
“선생님과는 나이 차이도 많고 직접 만나 본 적이 거의 없어 수상 소식에 매우 놀랐다. 2001년 ‘고바우 만화상’이 생겼을 때 첫 회 수상자가 ‘나대로’ 이홍우 선생이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시사만화가들이 이 상을 받겠구나’ 싶었는데 2회로 내가 받게 된 거다.”

1일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이현세 작가가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과 김성환 화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신원건 기자

―수상은 예상했었나?
“전혀…. 하지만 선생님이 ‘시사만화와 스토리만화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같은 만화인으로 보시는구나‘ 싶어 정말 신났었다. 그 상은 굉장히 영예로운 상이었다. 당시에는 만화가들에게 주어지는 개인상이 거의 없었고, 만화가에게 상을 주는 것에 인색하던 시대였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이현세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김성환 화백의 저서 ‘인간동물원’.

―김 화백에 대해 특히 기억나는 점은?
“철저한 프로. 작품을 절대 공짜로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한 번은 선생님이 내 만화 원화(原畵)를 갖고 싶어 한다는 말을 이두호 선생님을 통해 전달받았는데, ‘대신 선생님도 한 장 주신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고바우 영감’의 한 작품에 한 줄 감상평을 적어 보여주는 이현세 작가. 촬영 신수라 매니저

인터뷰 내내 이 작가의 김 화백에 대한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김 화백이 걸어온 시사만화가의 외길에 대한 당연한 존경의 표시라는 게 이 작가의 말이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선생님은 정말 수집광이었다”며 빙그레 웃었다.

―수집광?
“당시 작가들은 새해가 되면 신문사나 잡지사로부터 연하장에 쓸 그림을 부탁받아 그리곤 했다. 한국화나 서양화하는 화가들도 기자가 부탁하면 그려줬는데, 그렇게 쓰이고 나면 다들 그냥 폐기하거나 누군가 가져갔다. 대부분 그게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선생님은 버려진 그림까지 절대 버리지 않고 모으고 정리했다. 정말 수집광이었다.”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 캐릭터인 까치와 엄지.

―요즘 시사만화에 대한 생각은?
“1960년~1970년대 시사만화에는 통쾌함이 있었다. 지금처럼 매체도 많지 않았고, 통제가 심하던 시기여서 속은 답답한데 다들 시원하게 이야기하기가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고바우가 한 번씩 비꼬고, 날카롭게 꼬집어 주면 사람들은 박수치며 속이 시원했던 거다. 그런데 이제 글과 만화보다 영상이 더 익숙한 시대가 됐다. 유튜브처럼 다양하고 시각적인 콘텐츠들이 많다 보니, 사람들에게 시사만화는 더 이상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네 컷 시사만화는 몇 개의 선으로 단순화해서 그려내기 때문에 사실 그림이 아니라 ‘침묵의 글’로 봐야한다. 이야기 전달을 하기 위해 그림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림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바우 영감’의 한 작품에 이현세 작가가 쓴 ‘한 줄 감상평.’ “내 얼굴에도 먹과 커피를 바꿔 마신 기억이 열 번도 더 있다. 고바우 김성환 선생님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다. 그래서 김성환 선생님은 국민만화가시다”라고 썼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남은 기록이나 원화가 방대할 것이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대부분의 자료는 모두 보관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지는 못했지만 수장고가 있어서 만화 원고와 인터뷰 기사 등 자료는 모두 모아두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문학자 이어령 박사 다음으로 ‘이현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아카이빙을 시작해 아마 올해 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은 대략 4500권이 넘는 양이다. 아카이브 구축 목적은 보관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람들이 찾으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독자들에게서 ‘예전에 봤던 만화를 다시 찾아보고 싶은데 제목이 뭐였는지, 어디서 볼 수 있는지’를 묻는 이메일을 자주 받았다. 제목은 알려줄 수 있지만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 ‘아카이브를 만들어야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고바우가 바라본 세상’ 동아아카이브에서 감상하세요

8일 네 컷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잘 알려진 김성환 화백(1932-2019)의 4주기를 맞아 ‘고바우가 바라 본 세상’ 컬렉션을 공개합니다.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만화 속 키 작은 고바우 영감은 한 가닥 머리카락에 작은 안경을 걸친 채 동분서주하며 권력에는 당당하게 맞서고 서민들과는 애환을 나누며 1960년~19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본보가 소장한 원화(原畵) 중 450여 점이 이 컬렉션에 선정됐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이 컬렉션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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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애 지식서비스센터 아카이브기획파트장 makoo@donga.com
신수라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