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좀 복잡하다. 왜냐하면 완전히 한국에 정착하기 전에 한국과 영국을 계속 왕복했던 시기가 꽤 길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꾸준히 살기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난 한국 생활 16년 차다. 그러나 한편으로 2002 월드컵 전에도 이미 2, 3년 정도를 한국에서 살았으니 대강 반올림해서 보면 한국 생활 19년 차라고 말하는 것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또 따지고 들어가 보면 이미 그전에도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적 있었으니 1992년 내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다음 주쯤이 나의 31주년 ‘한국 방문 기념일’이 된다.
라떼는 말이야, 한국엔 인천이 아니고 지금은 국내선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김포공항이 국제공항이었다. 그 당시에 비행기에서 내리면 검은 제복을 입은 무섭게 생긴 출입국관리관을 거쳐서 입국 심사를 했었다. 지금이야 해외에서 상도 많이 받고 최첨단 자동출입국 심사 관리 시스템을 갖춘 인천공항에서 아무한테도 심문받을 필요 없이 출입국이 자유자재로 가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이 휴대전화란 게 없었다. 그 대신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빽빽이 적은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에서 신호음이 울리면 메시지를 확인하러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 다방(현재의 커피숍)을 가면 사람들이 삐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게 각 테이블에 전화가 비치되어 있기도 했었다. 그 당시 커피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처럼 컵 사이즈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지도, 각각 다른 종류의 맛과 향을 지닌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지도 않았고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약자인 ‘아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커피숍에서 팔던 헤이즐넛 커피, 밀크셰이크, 파르페 등이 기억에 아른거린다.
라떼는 말이야, 물론 BTS나 블랙핑크는 없었지만 그 당시엔 핫한 20대였던 7080이 신나게 듣고 춤추던 최신곡들이 있었다. 스마트폰 앱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신곡을 내려받아 듣지는 못했어도 그 당시 최신곡 믹스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리어카 한가득 팔던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매달 간격으로 빠짐없이 구매했던 이력이 있다. 그리고 재밌게도 그 카세트테이프들이 아직도 영국 부모님 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지난번에 영국에 갔을 때 발견했다.
라떼는 말이야, 청계천도, 서울로7017도 모두 자동차로 빽빽한 고가 차도로 덮여 있었고 버스 전용 차선도 없던 때라 버스로 서울 여행을 하려면 몇 시간이 지나도 모자랐었다. 그리고 지하철도 5개 라인밖에 없어서 지하철 라인이 닿지 않는 이태원이라도 가려고 하면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불편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기차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데 6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시간보다 돈이 더 많은 분들은 기차보다는 비행기로 서울∼부산을 오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