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규 박사가 무예 십팔기를 수련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십팔기를 수련한 그는 전공을 물리학에서 체육학으로 바꿔 무예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30년 넘게 수련한 그는 50대 중반에도 20대 버금가는 체력으로 한국 전통무예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복규 박사 제공
“제 나이 또래 무예인들의 공통점은 이소룡의 세례(洗禮)를 받았다는 겁니다. 제가 네덜란드에 와서 무술 사범들을 만나 ‘왜 무예를 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 이소룡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죠. 이소룡, 성룡(청룽), 이연걸(리롄제)로 이어지는 무협 영화의 주인공에게 매료돼 어릴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 쿵후를 익혔죠.”
양종구 기자
“무예가 신체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기는 하지만 그건 껍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무예를 통해 구현되는 신체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 발차기를 잘한다고 해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예의 이면에 담긴 인문학적인 영역을 어떻게 하면 구체화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깊어지면서 졸업할 무렵 전공을 바꿨습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무예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무예를 학문화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한계가 많았다.
“2004년쯤 유럽에 나올 기회가 있었죠.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무예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현지 무예인들을 만났어요. 무예가 유아 체육으로 전락한 한국 상황과 달리 유럽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동양의 무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죠. 다들 배우려는 열의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왜곡된 정보가 많았다. 그는 “무예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익힌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2007년 네덜란드로 떠났다. 곧바로 한국무예연구소를 설립해 레이던대 한국학센터와 함께 공동으로 한국 무예사 특강과 지도자 교육을 진행했다. 십팔기협회도 만들어 무예를 보급했다.
최 박사에게 무예는 삶의 일부분이다. 일상이 무예와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이를 ‘생활 무예’라고 했다. 밥 먹듯 매일 2∼3시간 수련한다. 그는 “어떤 무술이든 배워서 수련하면 몸은 단련된다. 무술의 발차기, 주먹 지르기 등은 좋은 유산소 운동이자 근육 운동이다. 우리 몸은 움직이는 수련이 없으면 퇴화한다”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수련한 그는 아직 20대에 버금가는 체력을 과시하며 날렵한 손·발놀림으로 네덜란드 거구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