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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기후의 ‘폐’해

입력 | 2023-09-08 03:00:00

지구촌 극심한 기후변화가 호흡기 건강 위협
유럽호흡기학회 의료진 경고
산불로 인한 연기 속 미세먼지, 폭우-홍수 후 번식한 곰팡이 등
“인류 전체의 폐 건강에 악영향”



올해 폭염, 태풍 등 극심한 기후변화로 기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극심한 기후 변화는 폐 질환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호흡기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폐렴,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폐 기능이 떨어져 만성적으로 기침을 하거나 가래가 생기거나 호흡곤란 등을 겪는다. 이미 숨이 차거나 숨쉬기 힘든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데, 기후 변화가 이런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유럽호흡기학회 소속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8개국 의료진들은 3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유럽호흡기저널에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럽호흡기학회는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폭염, 산불, 홍수 등이 사람들의 호흡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수집하고 있다. 학회는 이번 보고서에서 160개국 3만 명 이상의 폐 전문가들을 대표해 유럽의회와 전 세계 각국 정부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기오염은 호흡기 환자는 물론 인류 전체의 폐 건강에 광범위하게 악영향을 미친다. 대기오염이 일부 원인으로 작용하는 기후 변화는 호흡기 환자들에게 특히 위협이 되고 있다. 호흡기 환자들의 경우 대기오염과 기후 변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게 학회의 지적이다.

학회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소라나 요바노비크 아네르센 코펜하겐대 환경역학과 교수는 “기후 변화는 모든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만, 논쟁의 여지 없이 호흡기 환자들이 더 취약하다”며 “이미 호흡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후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일부 환자들에게는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기후 변화가 진행되면서 기온 상승, 폭염, 가뭄, 산불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

산불로 생긴 연기는 호흡기를 자극하는 미세입자들을 포함한다. 폭우, 홍수 등이 발생하면 실내 습도가 높아지면서 곰팡이가 잘 번식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더운 날씨가 지속되면 알레르기 유발원인 꽃가루 등이 공기 중에 장기간 머무는 조건이 형성되기도 한다. 특히 폐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는 아기와 어린이들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학회 회원들이 현 시점에서 보고서를 발표한 이유는 올해 들어 강력한 기후 변화 현상이 잇달아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기온은 관측 사상 가장 높았고, 캐나다와 미국 하와이 등에서는 전례 없는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폭우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했고 폭염이 지속됐다. 5일에는 88년 만에 서울이 가장 더운 가을밤을 맞기도 했다. 호흡기학회는 이러한 변화가 기후 학자뿐 아니라 호흡기 전문가들에게도 위협적인 상황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대기 질 기준이 세계보건기구(WHO) 지침에 못 미친다는 점도 지적됐다. WHO의 ‘대기 질 가이드라인(AQG)’은 연간 ㎥당 5㎍(마이크로그램) 이하의 초미세먼지(PM2.5)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EU 기준은 ㎥당 25㎍ 이하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기준(15㎍) 역시 WHO 가이드라인에 충족하지 않는다. 안데르센 교수는 “사람들이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시려면 정책 입안자들의 행동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