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 청하늘
종다리 울어대면
어머니는
아지랑이로 장독대 닦아놓고
나는
아지랑이로
마당 쓸어놓고
왠지 모를 그리움에
눈언저리 시큰거려
하늘 바라기
했지
―이준관(1949∼)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다 보면 ‘호모 비아토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인간을 이렇게 정의했다는 설명이다. 인류란 무엇인가를 쫓아가고 이동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여행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코로나 시절에 그렇게 갑갑했던가 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동이라든가 여행은 반드시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도 알지 못하는 대상을 쫓아갈 수 있다. 우리는 희망만으로도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 달려 나갈 수 있다. 인류에게는 먼 곳을 이동하는 능력만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먼 곳을 상상하는 힘도 있었다. 때로 우리의 영혼은 사냥꾼이 쏜 화살보다 멀리 날아갈 줄 알았다.
영혼이 미래와 먼 곳을 직감한다는 사실은 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가보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먼 곳을 그리워하는 한 마음이 등장한다. 철학자의 말을 조금 바꾸자면 호모 비아토르가 아니라 ‘영혼 비아토르’인 셈이다. 시는 바로 이 떠나는 마음, 쫓아가는 마음에서 나온다.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우리들은 진작부터 시를 쓰기로 예약된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