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0월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 당시 자신이 지휘하는 9사단 장병들을 격려하는 김종오 장군(가운데).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월미도 북한군 수백 명이 상륙작전 개시 수십 분 만에 죽거나 항복했으며, 상륙부대는 전사 1명과 부상 22명이라는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렇게 거짓말 지어내기를 밥 먹듯 하는 북한이 3개 대대가 패퇴했다는 것을 인정한 전투가 있다. 졌다는 얘기를 극히 싫어하는 북한이 대대급 병력의 몰살을 인정한 것은 아마 유일할 것이다. 이는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33편의 장편소설로 구성된 ‘불멸의 역사’ 시리즈 중 1950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 ‘50년 여름’이라는 소설에 등장한다.
이 전투가 바로 6·25 개전 초기 벌어졌던 춘천 전투이다.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보이지 않는 수천 수만 발의 탄알의 소나기는 단 몇 분 동안에 대대를 땅에 쓸어 눕혔다…. 다리를 건너간 역량은 한 개 중대밖에 못 되였다. 뒤따르던 두 번째 대대도 역시 같은 비극적 정황 속에 돌진하였다….”
사단의 공격을 저지시킨 것은 강원 춘천 봉의산을 방어하는 ‘괴뢰 6사’라고 소설은 밝히고 있다. 춘천 공격을 담당했다는 북한군 52사의 역할에 대해 소설은 ‘거의 단독으로 전선 중부를 담당하면서 주 타격 전선의 좌익인접을 보장하게 되여 있었고 동시에 적으로 하여금 아군의 주 타격 방향을 서부가 아니라 중부로 오인하게끔 하는 사명도 수행해야 했다’고 적고 있다.
‘불멸의 역사’ 집필을 담당한 작가들은 북한 최고의 작가들이며, 노동당 비밀문서도 볼 수 있다. 흰 것도 붉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 춘천의 패배다.
실제로 6사단은 6·25전쟁 발발 초기 춘천을 하루 만에 점령하고, 3일 뒤엔 경기 수원을 점령해 한국군 배후를 차단하려던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닷새나 막아냈다. 배후 포위망 형성에 차질을 빚은 북한은 결국 서울에서 3일을 허비했다.
이 72시간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북한이 계획대로 밀고 내려왔다면 국군은 재정비를 할 수가 없었다. 낙동강 전선이나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 것이다. ‘3일의 미스터리’에 대해 한강철교 폭파 때문이라는 설, 김일성이 남로당 폭동을 기다렸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북한 소설에선 중부 전선을 제시간에 뚫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밝히고 있다.
이 춘천대첩의 지휘관은 김종오 6사단장이었다. 그가 제 역할을 못 했다면 낙동강에서 대활약한 백선엽 1사단장도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의 대표적 영웅으로 백선엽 장군이 거론되지만, 대한민국의 생존에 있어 김종오 사단장의 공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사단장으로 지휘한 백마고지 전투는 중공군이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 전투다. 육군사관학교 교장, 15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1966년에 사망한 김종오 장군은 일본군관학교 1학년 재학 중 광복을 맞아 친일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