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차량엔 ‘노농적위군’ 탑승 정규군 아닌 예비군-민방위대 동원 전시 대비 국가 총동원 역량 과시 원수계급 장군, 김주애에 무릎 꿇어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인 9·9절을 맞아 9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민방위 무력 열병식’에서 ‘룡악산 샘물’이라고 쓰인 컨테이너 차량에 장착된 방사포가 행진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9일 0시를 기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한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량과 장비를 무기 탑재용으로 활용한 모습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그의 딸 주애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열병식에선 북한이 한미 기습 타격을 위해 사활을 걸고 개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전술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대신 생수 운반 차량 등에 설치한 방사포가 대거 등장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한 내 모든 상용 차량과 일반 노동자까지 총동원하겠다는 이른바 ‘국가 총동원 역량’을 과시하기 위한 열병식으로 풀이된다.
● 차량 위 시멘트포대 아래 숨긴 방사포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인 9·9절을 맞아 9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민방위 무력 열병식’에서 방사포를 장착한 농업용 트랙터가 행진하고 있다. AP 뉴시스
시멘트 포대를 가득 실은 빨간색 차량도 눈길을 끌었다. 시멘트 포대 60개가 깔려 있는 차량 덮개를 들어 올리면 방사포 12문과 무장한 시멘트 공장 노동자들이 등장하는 구조였다. 고속유탄발사기나 방사포 등 각종 무기를 장착한 농업용 트랙터도 행렬에 합류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9일 “뜨락또르(트랙터)들이 견인하는 반땅크 미싸일 종대와 … 노농적위군의 전투 능력을 과시하는 위장 방사포병 종대들이 광장을 누벼 나갔다”고 보도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상용 차량까지 총동원해 곧바로 이동식 발사대 등으로 개조할 수 있을 정도로 전시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주애에게 무릎 꿇은 ‘원수’ 계급 장군
이날 열병식에서는 원수 계급장을 단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왼쪽)이 주석단 특별석에 앉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귓속말을 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뉴시스
조선중앙통신은 열병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 대표 자격으로 방북한 류궈중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 중국 대표단과 러시아군 아카데미 협주단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원수 계급장을 단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이 시멘트 운반 차량으로 위장한 방사포 열병종대가 지나갈 때 주석단 특별석에 앉아 있던 김 위원장의 딸 주애에게 한쪽 무릎을 끓고 귓속말을 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지난해 군 서열 1위였던 박정천은 올해 1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겸 당 비서에서 해임된 뒤 군정지도부장을 하고 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통일부는 “군 서열 1위에서 밀려난 뒤 정확한 서열은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고위층이 김주애에게 무릎을 꿇는 장면은 처음 공개됐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