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극단 선택 전력 수용자, 시설 내 극단 선택 시 국가가 배상 해야”

입력 | 2023-09-11 11:53:00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전력을 가진 수용자가 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국가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교정시설 수용자의 죽음과 관련해 법원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지난 2010년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처음이다.

11일 법원에 따르면 대전지법 민사14단독 강길연 판사는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A 씨의 모친 B 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약 72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심리한 끝에 지난 2월 “피고는 약 2129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합해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A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대전의 한 보도방에서 근무하던 16세 소녀를 폭행한 뒤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방치해 뇌출혈에 의한 합병증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10월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A 씨는 정신질환 진단에 따라 수면제 등 약물을 복용했다. 같은 해 12월에 은닉한 다량의 약을 한꺼번에 복용한 A 씨는 같은 거실 내 수용자들에게 발견돼 응급실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이후 A 씨는 2020년 8월 대전고법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고 같은 해 9월 충주구치소로 이감됐다. 그러다 A 씨는 같은 해 12월 형이 확정됐음을 교도관으로부터 전해 듣게 됐다. 소식을 들은 지 6일 후 A 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부검 결과 A 씨의 사인은 약물 중독이었다. 당시 A 씨는 양극성 정동장애 및 허리통증 약물을 복용 중이었다.

지난해 4월 A 씨의 친모인 B 씨는 A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구치소에서 A 씨의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용된 A 씨는 스스로 시설에서 나갈 수 없고 행동의 자유도 박탈돼 있으므로 시설 관리자는 A 씨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확보할 의무가 있다”며 “구치소 의료과는 A씨에 대해 우울증 자살 충동으로 주의 깊게 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냈고 심리 상담 결과에서도 중형 선고를 받은 만큼 지속적인 상담과 동정 관찰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배상책임 근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충주구치소는 A씨 사망 전까지 추가 상담이나 동정 관찰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 바 없다고 보이고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주의 의무를 위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는 교도소에 수용되기 전에도 3차례에 걸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전력이 있었고, 구치소 내 약 복용 방침을 어기고 교도관의 감독을 피해가며 다량의 약을 은닉했다”며 국가의 배상책임 범위를 10%로 제한했다.

법무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 재판은 오는 10월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