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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클래식感]“클래식 음악을 신청해 듣는 카페가 한국에 있다고요?”

입력 | 2023-09-11 23:39:00

1971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방송에 앞서 영국 BBC와 대담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BBC 유튜브 화면 캡처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당신이 어릴 때부터 접한 음악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란 말이죠? 한국 사람들이 클래식에 친숙한가요?”

“맞아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카페들도 있어요. 종이에 원하는 음악을 적어 내면 음악을 틀어주죠.”

“아하, 말하자면 ‘클래식 디스코텍’ 같은 거로군요?”

나이 든 남성과 앳돼 보이는 동양인 여성이 TV 카메라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영국 배우 마이클 플랜더스, 여자는 23세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다. 1971년 영국 BBC 화면. 정경화는 앙드레 프레빈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함께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방송을 앞두고 영국 시청자 앞에서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고 불과 18년이 흐른 아시아의 먼 나라에서 서양 음악을 듣는 광경을 묻는 대담자의 눈빛이 흥미롭다.

그 무렵엔 많은 일이 있었다. 1년 앞선 1970년, 정경화는 프레빈 지휘 LSO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며 런던 무대에 데뷔했고 바로 유명 음반사 데카에서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담은 데뷔 음반을 내놓았다. 이듬해인 1971년, 이 음반은 해외 대형 음반사와의 계약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된 최초의 라이선스 클래식 음반이 됐다.

1971년 5월 6일 서울 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동아일보사 주최로 런던 심포니 내한공연이 열렸다. 당시 소련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본의 도쿄 오사카 나고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무대였다. 시민회관에서 정경화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동아일보 기사는 ‘정 양은 팬들의 열광 속에 다섯 번이나 커튼콜에 응했다’고 뜨거운 분위기를 전했다.

3년 뒤인 1974년, ‘동토의 땅’ 소련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정경화의 동생인 21세의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공동 2위에 오른 것이다. 그는 대회 후 김포국제공항에 내려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고 박정희 대통령이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이달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정 트리오’ 콘서트가 열렸다. 트리오(3중주단)의 맏이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연주 현장에서 은퇴했고 75세가 된 정경화, 70세가 된 정명훈과 함께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55)이 앉았다.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춘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A단조는 이들의 전성기처럼 예각(銳角)이 살아있는 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연주보다도 호흡은 자유로웠고 푸근했으며 피날레로 치닫는 절정은 처연했다. 많은 청중이 눈물을 글썽였다.

정명훈이 서울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2년 뒤인 1976년, 초등학생과 중학생 형제는 1950년대 동숭동 클래식 다방의 단골이었던 부모님과 함께 명동에 있는 백화점의 음반 코너에서 라이선스 음반 세 장을 샀다. 자신들이 고른 첫 클래식 음반이었다. 막냇동생은 지금 1971년 국내 최초로 발매된 라이선스 음반을 들고 있다.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굉장한 추억이군요! 한 음악 사랑꾼(music lover)이 또 다른 음악 사랑꾼에게, 정경화, 2002년 4월 19일.” 기자가 서울 서초구의 호텔에서 바이올리니스트를 인터뷰하며 받은 메시지다. 음반을 언제 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이 흘렀다. 그들의 나라는 조성진과 임윤찬, 그 밖의 수많은 클래식 스타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주최하는 벨기에의 국영방송은 이 수수께끼의 나라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두 차례나 제작했다. 그 모든 일의 씨앗은 이 나라가 전쟁의 잿더미에서 비로소 일어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에, 아니 그 이전에 마련되고 있었다.

반세기 전의 음악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정경화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을 듣고 있었을 청년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모습 위에, 지난 세기말 보도자료를 들고 신문사 편집국을 찾아다니던 ‘정 패밀리의 어머니’ 모습이 겹친다. “어떻게 직접 다니십니까?”라고 물으면 “재주 있는 젊은 애들 일이라서…”라고 했다. 그가 들고 다니는 자료는 어린 유망 음악가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것이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