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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김현수]화웨이가 쏘아올린 반도체 기술… 허풍과 혁신 사이

입력 | 2023-09-11 23:48:00

삼성-TSMC 3나노 칩보다 5년가량 뒤처진다지만
기술史에서 허풍이 혁신된 일 많아… 방심 말아야



김현수 뉴욕 특파원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를 뚫고 만든 중국 화웨이 새 5세대(5G) 스마트폰 ‘메이트 60 플러스’ 이후 세계는 퍼즐 조각 맞추기 중이다. 화웨이 기술이 허풍인지 혁신인지, 그 사이 어디쯤 있을 진실을 찾기 위해 미 상무부는 조사에 들어갔고 세계 반도체 기업이나 금융 투자자들도 저마다 분석에 나섰다.

화웨이가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SMIC가 만든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 칩. 중국 반도체 설계, 장비, 파운드리라는 3박자, 즉 생태계가 성장했다는 방증이라 이목이 집중됐다. 3나노 양산 경쟁 중인 1위 TSMC나 2위 삼성전자 수준에 비하면 5년여 뒤처진 기술이다. 하지만 서방 반도체 생태계에서 고립된 채 자력으로 양산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깼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진다. 테크인사이츠라는 분석업체가 이 스마트폰을 분해해서 7나노 칩이 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자체 기술 여부는 여전히 의문이다. 화웨이가 이 스마트폰 판매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며칠 전 미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 반도체협회(SIA)가 회원사들에 화웨이 관련 주의를 요하는 경고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직접 제재 대상이 된 이후 미국 업체와의 거래가 원천 차단된 화웨이가 다른 기업 뒤에 숨어 중국 내 반도체 공장 2곳을 인수하고 3곳을 세우려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성사될 경우 화웨이는 다른 업체 이름으로 몰래 인수한 공장을 통해 미국 반도체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

과연 수율(收率·결함이 없는 합격품 비율)을 높여 대규모 양산 체제를 갖췄는지는 또 다른 의문점이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없이 시장 경쟁력이 있는 수율을 달성한 것인지 미 월가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게다가 SMIC가 7나노 공정 반도체 생산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는 사실상 이달부터 중국 수출이 금지된다. 중국 자부심과 별도로 향후 고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의미다. 그사이 한국 대만 반도체 기술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기술 시장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특정 상황과 맞물려 업계 선두를 바꿔 치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983년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도쿄 선언’ 당시 인텔과 세상은 과대망상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기업의 명운을 건 투자와 개발자들의 열정, 더불어 미일 반도체 갈등이라는 특수 상황이 맞물려 한국은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할 계기를 맞았다.

지난달 대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의 미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도약의 순간을 읽을 수 있었다. TSMC는 반도체 강자 삼성과 인텔을 넘겠다는 꿈을 키워 왔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은퇴한 그의 집 앞에 해고된 임직원들이 ‘거짓말쟁이’라는 팻말을 들고 몰려들 만큼 어려움을 겪던 시기가 있었다. 그는 현업에 복귀해 투자자들의 반발 속에서도 이 임직원들을 재고용하며 때를 기다렸다. 2010년 애플에서 연락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기업에 속하게 된 TSMC 신화의 시작이었다.

기술 산업에서는 한순간에 시장 판도가 바뀐다. 누구든 허풍에서 혁신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미중 갈등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오만은 더욱 버려야 한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