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가 1987년 군 판사 시절 간첩으로 몰린 시민에게 “고문에 의한 자백이 의심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군사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사건은 유죄 선고가 불문율이었던 시기여서, 이 후보자는 판사 임용이 힘들어질 것이란 상부 압박에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 개업을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가 12일 입수한 이 후보자의 1987년도 제주방어사령부 보통 군법회의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1970년 무렵부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지도원과 접촉하며 군부대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 행위를 한 혐의(진영간첩,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등으로 군 검찰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제주시의 보안부대 사법경찰은 1978년 무렵부터 24차례에 걸쳐 해군 경비정의 귀항 시간, 어선들의 귀항 신호들을 수집하고 군납 도시락 장사 등을 하며 군 부대의 인원 및 무기 현황을 파악한 혐의 등으로 A 씨를 체포했다. 이후 수사 및 검찰조사 과정에서 나온 A 씨의 구체적인 자백 내용이 공소사실에 담겼다.
하지만 당시 해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며 해당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 후보자는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이 후보자는 당시 판결문에서 “피의자가 연행되고 1주일 동안 작성된 조서가 없다가 이후 범행을 모두 자백하는 진술서가 작성되는 등 수사관의 가혹행위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피고인이 1954년부터 1981년까지 일어났던 일을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30년 전부터 있었던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무런 자료도 없이 일시, 장소, 상황, 대화내용 등 미세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기억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것은 위 자백 내용이 객관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정상인의 경험칙에 반한다 할 것”이라며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 후보자를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당시 이 판결 과정에서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 개업을 고민했다고 한다. 제5공화국 시기였던 당시 군 내에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은 판사가 유죄를 선고하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후보자의 상관은 무죄 판결을 내리겠다는 이 후보자에게 “무죄 판결하는 순간 (전역 후) 판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압박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이후 각종 시국사건에도 법리 중심으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택연금한 서울 마포경찰서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10년 만에 정식 재판에 회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1998년 6월 전·현직 언론인 7명이 반공법·포고령 위반으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