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CJ ENM 부사장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진화해 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등장하며 디지털 플랫폼이 부상했고, 인공지능(AI)·데이터 분석으로 시청자들의 소비 패턴은 개인화됐다. 융·복합 기술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메타버스용 콘텐츠 시대를 열고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바야흐로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뉴노멀’을 예상하게 한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와 디지털 기반 미래 미디어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OTT의 치열한 공세 속에, 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과 디지털 역량이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정부의 행보에서 ‘세계 4대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AI 기술은 기획, 제작, 유통·마케팅에 이르는 미디어 콘텐츠 산업 가치사슬 전반을 바꾸고 있다. 일례로 촬영 세트 전체를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으로 꾸며 다양한 형태의 배경을 스크린에 구현할 수 있는 버추얼 스튜디오는 콘텐츠 제작 비용을 3분의 1, 제작 기간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자막, 번역, 더빙부터 불법 복제물 탐색에 이르기까지 활용 영역도 무궁무진하다. AI 경쟁력이 콘텐츠 기업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반면 글로벌 OTT 기업은 발 빠르게 AI를 접목시키며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맞춤형 콘텐츠로 초개인화 시대를 연 넷플릭스는 제작 단계에 AI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AI로 시나리오 소재를 발굴하고 대본을 분석해 적합한 촬영 장소를 찾아내는 등 제작 효율을 높이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AI로 오프닝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시각특수효과(VFX)나 로봇 등 AI 기반 신유형 기술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 중이다. 글로벌 OTT 하청 기지화를 우려하는 국내 기업에 이 같은 기술 격차는 뼈아프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문제의식이 발빠른 행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를 ‘AI 일상화 원년’으로 선언하고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로드맵을 실행하고 있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AI 인프라와 데이터 허브를 제공하고 관련 인재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과기정통부에서 발표한 계획이 영상산업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것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치밀한 구성, 다양한 장르를 앞세워 글로벌 팬의 사랑을 받은 K콘텐츠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AI와 디지털로 경쟁 원천을 넓혀가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 향후 10년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