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해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반드시 같은 ‘종족’은 아닙니다. 성별, 연령이 같아도 관점이 다르면 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보다 더 크게 다른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세대가 다르면 이 사람의 개인사와 저 사람의 개인사가 다르니 관점이 다를 확률이 높습니다. 경험의 시점(時點)이 다르면 관점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시점’은 ‘시간의 흐름 가운데 어느 한 순간’입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푸는 방법은 시점이 서로 멀어도 관점을 가깝게 하는 데 숨어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석가로서 보면 직장도 가족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직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이지만 가족 관계가 겹쳐 어른거립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옮겨오면서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핵가족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의 중심이 됩니다. 아이는 대가족에서 이미 겪었을 좌절, 실망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서 가족이 아닌 남들과 일하게 됩니다. 쉽게 갈등 구조에 노출되고 가족 간에나 하던 행동을 직장에서 생각 없이 하기도 합니다. 남들이 자신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에 예민한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직장 상사가 설령 대가족에서 자란 경험이 있어도 핵가족에서 자란 직원의 입장을 고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두 사람의 개인사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양측 모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전이 현상의 관점에서도 보아야 합니다. 직장 상사에게 서로 사이가 나쁜 자식이 있다면? 직원에게는 상사와 같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겉보기와 달리 이 가족의 갈등이 저 가족의 갈등과 충돌하는 겁니다.
아들, 며느리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애써 키운 아들이 결혼하면서 멀어졌다면 외롭고 배제된 느낌이 들어도 해결책은 막막할 겁니다. 가족 간에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이미 품 안의 아이가 아니니 서로 입장이 다르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방법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제는 아들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사람은 누구나 발달 단계를 거치고, 각 발달 단계에는 성취해야 할 고유 과제가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발달 단계와 과제가 아주 다릅니다. 임원과 직원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발달 단계와 과제로 상대를 끌어들이려 하면 부작용만 생깁니다. 어떤 관계이든지 진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진심인 척하는 관계는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공감하기 어려우면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변화를 외쳐도 마음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일을 주저하고 저항하고 방어합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 반, 익숙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 반이 맞섭니다. 변화는 낯설고 두렵습니다. 망설임은 거리 두기 아니면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견디기 어려워도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행동해서는 후회하게 됩니다. 인연을 끊겠다고 통보한다면 깨진 접시처럼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를 던져도 새 직장에서 적응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감정을 조절하며 세밀하게 살피고 고민할 일은 고민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