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게임 D-10] 12세 최연소 亞게임 대표 체스 김사랑, 상대 빈틈 파고들어 뒤집는게 특기 성인 선수들 제치고 선발전 2위… “세계1위 꺾고 한국 첫 메달 따겠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 중 최연소인 체스 국가대표 김사랑이 1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자신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물인 ‘퀸’을 집어 들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김사랑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체스 퀸’이 돼 한국 체스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체스에는 승리를 위한 ‘3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승패를 가르는 킹을 보호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앙을 되도록 먼저 차지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최대한 많은 기물(체스의 말)을 진출시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다.
이를 알고 체스 국가대표 김사랑(12·양평동초교)의 오프닝(첫 12수 이내 전략)을 보면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상대가 중앙을 차지해도 내버려 두고 자기 기물도 적게 진출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수 뒤면 김사랑이 누구보다 체스 원칙에 충실한 선수임을 알게 된다. 본격적인 역습이 시작되면 중앙과 상대 진영은 김사랑의 기물로 가득하다.
1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사랑은 “보통 내가 후공(後攻)인 블랙을 잡았을 때 이런 오프닝을 택한다”며 “누군가는 ‘너무 수비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안정적’ 전략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비책을 세워놓고 상대가 빈틈을 보일 때 파고들어 전세를 뒤집는 게 내 특기”라고 말했다.
김사랑은 경기 양평군에 있는 집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체스 학원을 오가면서 실력을 키웠다. 양평 집에서 서울 학원까지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김사랑의 부모는 딸이 체스에 전념할 수 있도록 2020년 서울로 집을 옮겼다. 그런데 김사랑이 ‘체스를 처음 시작한 학교 이름으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싶다’고 해 다시 양평으로 전학을 갔다.
김사랑은 양평동초교 2학년이던 2019년 방과 후 활동으로 바둑 수업을 들으면서 체스를 처음 접했다. 김사랑은 “바둑 선생님이 재미 삼아 체스를 알려주셨는데 너무 재미있어 빠져들게 됐다. 바둑과 달리 체스는 기물마다 기능이 다르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사랑은 암기력이 비상한 아이로 통한다. 5절까지 가사가 700자를 넘는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초등학교 1학년 때 다섯 번만 듣고 다 외웠다. 체스는 가능한 한 많은 경우의 수를 기억하고 계산해야 유리한 수를 둘 수 있기 때문에 암기력이 중요하다. 김사랑은 “최대 5가지 경우의 수를 동시에 머릿속에 그려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끈기도 남다르다. 김사랑은 “1학년 때 열린 교내 독서 골든벨에 나가 입상하지 못했는데 오기가 생겼다. 다음 해 같은 대회를 앞두고 20일 동안 출제 도서 4권을 하루 세 번씩 소리 내 읽으며 공부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했다”고 말했다. 1만2000쪽 가까운 분량이어서 부모도 ‘설마 저걸 정말 다 읽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약속을 지킨 김사랑은 같은 학년 학생 약 100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2등을 했다.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대회 때 아시안게임 종목이었던 체스는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빠졌다가 항저우 대회를 통해 다시 정식 종목이 됐다. 아시안게임 체스에는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모두 4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한국 체스는 아직 아시안게임 메달이 없다.
김사랑은 “김연아 언니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을 세계에 알렸듯이 나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체스 첫 메달을 따 한국 체스를 알리고 싶다”며 “여자 체스 세계랭킹 1위인 허우이판(29·중국)을 이번에 꺾어보겠다”고 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