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의 힘[2]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남녀 주인공은 결혼식 날 비바람이 몰아쳐 야외 피로연장이 아수라장이 됐지만,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어느 순간에도 웃을 수 있는 긍정성이 삶 전체의 여정을 좌우할 수 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런데 이 영화의 묘미는 이런 와중에도 해처럼 밝은 미소를 짓는 신부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와 신랑 팀(도널 글리슨)의 표정에 있다. 이들에게선 결혼식이 망했다는 절망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뜻밖의 재미있는 변수를 만났다는 듯 화사하게 웃는다. 처음엔 궂은 날씨에 난감해하며 얼굴을 찌푸리던 하객들도 점차 미소를 되찾는다.
자주 짓는 표정이 인상 만들어…인생까지 좌우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전까진 원래 생긴 대로 살았지만, 40세 이후부턴 살아온 대로 ‘생겨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들도 인간의 표정을 연구한다. 자주 짓는 표정이 평소 얼굴로 굳어지고,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살아온 삶까지 유추해볼 수 있어서다. 이런 맥락에서 결혼식 사진을 보면 부부의 결혼생활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다고 한다. 영화 속 메리와 팀처럼 결혼식에서 뒤센 미소를 지으며 밝게 웃은 부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결혼식 날 억지로 웃거나 무표정이었던 부부는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결혼식 날 긴장해서 얼어붙은 미소를 지었다고 결혼생활이 별로일 것이라고 단정짓긴 어렵다. 관건은 배우자와 첫 출발을 하는 결혼식 날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는지다.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 신랑 신부가 진짜 미소를 짓지 않고, 표정이 굳어 있다면? 부부 관계의 이상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사진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정략결혼 하는 재벌가의 결혼식 장면. jtbc 화면 캡처
놀랍게도 이런 예측은 거의 비슷하게 맞았다. 이들 중 결혼식에서 행복한 진짜 미소를 지은 두 커플은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반면 어색한 미소를 지은 나머지 두 커플은 이혼하거나 별거 중인 상태였다. 캘트너 교수는 “결혼식에서 뒤센 미소를 많이 보이는 부부는 삶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가볍게 여기고, 어떤 갈등에도 더 쉽게 대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졸업사진 ‘찐’ 웃음이 30년 후 삶 예측
캘트너 교수가 자신 있게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앞서 진행한 30년간의 추적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잘 웃고, 긍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를 알아보기 위해 여대생 141명을 30년간 추적 조사했다. 연구 대상은 1958~1960년 미 캘리포니아주의 한 여대에서 대학 졸업 앨범 사진을 찍은 당시 만 21세 학생들이었다. 연구팀은 졸업사진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해 눈, 입, 광대 근육의 웃는 정도를 측정해 1~10점으로 점수화했다. 가장 무표정인 사람은 1.8점을 받았고, 가장 활짝 웃은 사람은 8점을 받았다. 이 가운데 눈 근육이 움직이는 뒤센 미소를 지은 사람은 50명이었다. 나머지는 입만 웃거나 무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들이 만 27세, 43세, 52세가 될 때마다 건강 상태, 결혼생활, 가족 관계, 사회적 역할, 직장 생활, 대인관계 등을 조사하기 위한 면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젊은 시절의 얼굴 표정과 30년간 삶의 궤적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나타났다. 졸업사진에서 진짜 미소를 지은 이들은 직장이나 결혼생활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독신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다. 정신적, 신체적 문제도 거의 없었다. 가정이나 직장에 소속감을 느끼고, 부정적인 기분도 덜 느꼈다.
젊은 시절의 표정으로 평생의 삶의 궤적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놀랍다.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긍정적 성향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동아일보 DB
내가 웃으면…‘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영향 받아
잘 웃고 긍정적인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수십년간 조사를 통해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가 있다. 내가 웃으며 긍정적 기운을 발산하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행복감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한다. 행복감을 주는 사람은 당연히 친구가 많을 확률이 높고, 원만한 대인 관계는 행복감을 유발하는 선순환을 낳는다. 연구팀은 아래와 같이 각 개인의 감정 상태와 대인관계를 시각화했다. 각 점은 1명의 개인을 의미한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일 경우 줄로 이어진다. 점이 파란색이면 현재 상태가 ‘불행’하다는 의미고, 밝은 연두색에 가까울수록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단계 법칙에 따라 가까운 사이에 서로 행복과 불행한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파란색 점들과 연두색 점들이 줄로 연결돼 몰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서 상태에 따라 파란 점은 불행한 개인을, 연두색 점은 행복한 개인을 의미한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까지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파란색 점과 연두색 점은 서로 연결되어 몰려 있다. 영국의학저널
집중력-면역력-창의력도 높아져
사실 웃음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는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서 웃음이 주는 활력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거창하게 삶 전체의 행복감을 위해서뿐 아니라, 일상에서 능률을 올리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웃음은 중요하다. 웃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몸과 마음의 훨씬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게티이미지뱅크
공부나 일을 시작하기 전 집중력을 높이고 싶다면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보고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바탕 웃고 난 뒤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능률을 더 끌어올 수 있다. 영국 워릭대 앤드루 오스왈드 경제학과 교수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76명을 절반으로 나눠 한 그룹에만 개그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두 그룹 모두에게 수학 문제를 풀도록 했다. 그 결과는? 문제 풀기 전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한바탕 웃고 시작한 이들의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나이 들수록 많이 웃으면 창의력 생겨
나이가 들면 웃음은 창의력을 유발하기도 한다. 2020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발행하는 신경과학 분야 학술지 ‘대뇌 피질(Cerebral Cortex)’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웃을 때 뇌의 디폴트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영역이 많이 활성화됐다. 이곳은 ‘멍’하니 휴식을 취할 때 일하기 시작하는 뇌의 영역으로, 그동안 쌓인 기억과 생각을 정리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여유 공간을 마련한다. 웃을 때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웃음이 쉬는 것만큼의 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창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건강·장수 비결로 꼽히기도
웃음은 면역력도 높여준다. 리 버크 미 로마린다대 연구진에 따르면, 1시간짜리 재미있는 영상을 시청하기 전과 후로 혈액을 채취해 검사했더니, 혈액 속 면역력과 관련한 성분들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효과는 영상 시청 후 12시간 이후까지 지속됐다. 이 밖에도 많이 웃는 사람은 고혈압, 당뇨, 심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작아져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의학적 연구 결과가 수없이 많다.
“웃음은 몸에서 긴장 에너지 빼내는 것”
증기기관차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 증기를 뿜어내야 하듯 우리도 살면서 쌓인 긴장 에너지를 웃음을 통해 뱉어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