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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이 오는 순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6〉

입력 | 2023-09-15 23:36:00


여름 내내 방충망에 붙어 울던 매미. 어느 날 도막난 소리를 끝으로 조용해 졌다 잘 가거라, 불편했던 동거여 본래 공존이란 없었던 것 매미 그렇게 떠나시고 누가 걸어 놓은 것일까 적멸에 든 서쪽 하늘, 말랑한 구름 한 덩이 떠 있다


―조승래(1959∼ )

여름은 격렬하다. 그것은 타는 듯한 열기와 소란스러운 매미 소리와 장맛비 같은 것으로 온다. 해가 갈수록 여름은 뜨거워지고, 세월이 지날수록 여름은 부담스럽다. 사는 일 자체도 경쟁으로 달아오르는데 거기에 여름의 열기까지 보태자니, 청춘도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쳐 갈 무렵 여름의 격렬함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그 사라진 빈자리로 가을은 온다. 그러니까 가을은 지우면서 들어서는 계절인 셈이다. 소란스러움 대신 침묵하고 싶은 계절. 밖으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깊어지고 싶은 계절. 가을이 독서와 철학의 계절이라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말을 비우고 깊어지세요’ 하고 가을의 하늘과 청명함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듯하다.

가을의 메시지에 응답하고 싶을 때 조승래 시인의 시를 읽기 참 적당하다. 여름이 물러나는 장면을 그는 회화적으로 그리지 않고 청각의 소거로 표현했다. 여름의 소리가 사라진 그 자리에 ‘적멸’이라는 가을의 핵심이 찾아온다. 적멸은 죽어 없어진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번뇌같이 보이지 않는 사념들까지 모두 지워진다는 뜻이다. 적멸의 가을이 오신다면 분노도 원망도 잔잔해질 것이다. 우리는 가을에 퍽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