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서 첨단과학에 이르기까지… 색과 함께 진화한 인류사 조명 원근법 탄생-광학 발전에 기여… 인류가 시야 넓히는데 큰 영향 ◇풀 스펙트럼/애덤 로저스 지음·양진성 옮김/392쪽·2만1000원·글항아리
기원전 3만5000년∼기원전 1만 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의 일부. ‘풀 스펙트럼’의 저자는 “동굴벽화의 색은 화석화되고 시간이 흐르며 자취를 감췄다. 이 때문에 동굴 예술은 우리가 상상한 것과 애초에 다른 색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약 10만 년 전 석기시대 주거지 흔적이 남아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롬보스 동굴에선 빨강, 노랑, 주황, 갈색을 만드는 데 쓰이는 광물 ‘오커(Ochre)’가 발견됐다. 전복 껍데기와 그 굴곡에 딱 맞는 돌도 나왔는데, 껍데기 안쪽은 오커로 뒤덮여 붉은색을 띠었다. 곳곳엔 해면골질(海綿骨質·골수가 차 있는 뼈의 부분)이 으스러진 흔적도 있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동굴에서 살았던 옛 인류가 전복 껍데기 위에 동물 뼈에서 나온 골수 등 유기물을 얹은 뒤 오커를 돌로 갈아 물감을 만들었을 거라고 추론했다. 옛 인류가 만든 물질이 접착제였는지 물감이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약 10만 년 전 인류가 어떤 의도에서든 다채로운 색을 만들었고, 이 색은 우리 세계를 다채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종합 월간지 ‘와이어드’ 선임 기자가 색과 함께 진화해온 인류사를 조명했다. 색의 역사는 문화, 예술만 발전시킨 게 아니다. 인류가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하던 때부터 안료는 최고의 무역 품목 중 하나였다. 과학기술 발전사에서도 색은 빼놓을 수 없다. 초음속 제트기와 인공 골반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금속 티타늄은 현대의 기초 색으로 꼽히는 하얀색을 만드는 데 쓰이는 광물이다. 티타늄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2개를 결합시켜 이산화티타늄을 만들어 낸 덕분에 석탄처럼 까만색이었던 티타늄이 하얀색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문화 예술 경제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가 만들어낸 색과 그 색이 불러온 변화를 담아냈다.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가 1427년경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그린 ‘성삼위일체’. 7.6m 높이의 이 작품은 원근법을 최초로 적용한 서양화로 꼽힌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저자는 인간이 색을 쓰는 이유에 대해 “자신들이 본 것 또는 상상한 것을 더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라며 “색을 사용했다는 건 새로운 지성이 완전히 꽃피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