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일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콩팥이식 김숙자 씨 콩팥 6%만 작동, 만성 신부전… 콩팥 이식 대기자 명단 올리고 매주 3회 투석 받으며 버텨나가… 시동생이 콩팥 기증 의사 밝혀 이식 성공했지만 콩팥 기능에 문제… 원인 항체 밝혀낸 뒤 치료 급물살
김숙자 씨(왼쪽)는 만성 신부전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시동생에게서 콩팥을 기증받아 새 삶을 얻었다. 하지만 이식 후 항체 이식 거부 반응으로 콩팥을 잃을 뻔한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식 수술을 집도한 민상일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김 씨의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며 김 씨의 투병 의지를 높이 샀다. 서울대병원 제공
김숙자 씨(67)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였다. 콩팥 기능이 6%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올해 4월 말에 콩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민상일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 씨는 새 콩팥을 얻었으니 만성 신부전증에서 해방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김 씨는 33일 동안 퇴원하지 못하고 제2의 투병을 해야 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던 것. 자칫 새 콩팥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김 씨와 민 교수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 “당뇨병 때문에 콩팥 질환 악화 가능성”
4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콩팥 질환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목이 마르고 물을 많이 먹게 됐다. 다리가 붓고 온몸이 가려울 때도 있었다. 민 교수는 “노폐물이 빠지지 못해 나타나는 증세”라고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처했다. 운동은 더 충실하게 했다. 식단에도 신경 썼다. 쌀밥은 잡곡으로 바꿨다. 나트륨과 칼륨은 콩팥 질환자가 특히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성분이 많은 바나나, 아보카도, 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는 먹지 않았다.
김 씨는 이렇게 대처하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콩팥 상태는 더 나빠졌다. 민 교수는 “콩팥이 일단 손상되면 식단 관리나 운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
● 투석 버티다 시동생 콩팥 이식
지난해 2월, 김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콩팥 기능이 6%만 남아있었다. 말기 신부전증 진단이 떨어졌다. 투석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혈액투석은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노폐물과 과잉 수분을 제거한 뒤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투석을 하려면 혈액의 이동 통로를 먼저 만들고, 4∼8주 후에 투석을 시작한다.
김 씨는 5월 말부터 투석을 매주 3회씩 받았다. 투석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투석을 한다고 해서 콩팥 기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민 교수는 “투석할 때 콩팥 기능의 10∼15%만 작동한다. 투석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태는 더 안 좋아지고 환자는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일한 해법은 콩팥 이식이다. 7월에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코노스)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순번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10월, 김 씨의 시동생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시동생은 지인이 투석하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힘들 것 같더라며 말을 꺼냈다. 이어 김 씨에게 콩팥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다. 가족이 무척 화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의 혈액형은 B형, 시동생은 A형이었다. B형에는 A형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다. 다만 김 씨의 경우 이 항체 수치가 낮았다. 이식에 큰 문제가 없을 수준까지 항체 수치를 떨어뜨렸다.
모든 작업이 끝난 올해 4월, 콩팥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로봇을 사용해 3시간 만에 끝냈다. 콩팥을 이식한 경우 보통은 10일 이내에 퇴원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러지 못했다. 또 다른 투병을 시작해야 했다.
● 33일 동안의 두 번째 투병
수술 후 소변이 잘 나오면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다. 보통은 수술 후 1시간당 400∼500cc의 소변을 본다. 하지만 김 씨는 300cc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곧 나오지 않았다. 민 교수는 초음파로 이식된 콩팥을 살폈다. 혈액이 잘 공급되고 있었다. 수술에는 확실히 문제가 없다는 증거.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항체 거부 반응일 확률이 높았다. 투석과 같은 방식으로 혈액을 꺼내 문제가 될 만한 항체 수준을 낮추고 다시 혈액을 집어넣는 ‘혈장 교환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첫 일주일 동안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 씨는 여전히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을 또 해야 했다.
이식받은 콩팥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커졌다. 김 씨는 “시동생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악의 경우 김 씨 자신은 다시 투석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콩팥을 내어준 시동생의 헌신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끝나게 된다는 사실이 내내 걱정됐다는 것이다.
민 교수의 걱정도 커졌다. 이식받은 콩팥의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항체 거부 반응이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곧이어 항체의 정체도 알아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만 보고된 특이 항체였다. 이 항체의 공격으로 콩팥이 기능을 못 하고 있었던 것. 민 교수는 이 항체를 다루는 외국 기업 국내 지점과 접촉해 이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어 그 항체의 수치를 낮춰갔다.
김 씨는 이식 수술 후 33일 동안 입원하면서 15회의 혈장 교환술을 받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도 3회 시행했다. 혈장 교환술과 투석 모두 4시간이 소요된다. 김 씨는 그 고통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덕분에 20여 일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33일이 지난 6월 1일, 마침내 김 씨는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 “의사의 격려가 큰 희망이 됐다”
김 씨는 한 번도 ‘완치’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민 교수님이 와서 ‘걱정하지 마시라. 다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의사의 헌신 또한 완치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민 교수는 김 씨가 입원한 기간 내내 휴일을 포함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태를 체크했다. 휴일인데도 민 교수가 직접 김 씨 병상을 찾는 날도 많았다. 요즘 김 씨는 2주 혹은 3주마다 민 교수를 만나 몸 상태를 살핀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한 달 혹은 두 달마다 병원에 오면 된다. 또 하루에 2회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약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 김 씨는 “매일 1시간 반씩 걷는다. 비가 와도 걷는다. 요즘 몸 상태는 최상이고, 무척 만족하고 있다”며 웃었다.
재발 우려는 없을까. 민 교수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을 되찾은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콩팥 이식 환자도 감기약은 먹어도 된다. 다만, 코로나19 치료제(팍스로비드)는 면역억제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11월, 김 씨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판단에서다. 민 교수도 “이제 마음껏 다니셔도 된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