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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자가 되고 나서야 주위 사람들이 부자라는 걸 알았다

입력 | 2023-09-16 10:55:00

[돈의 심리] 부자들,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속 이야기, 돈 이야기 꺼내




영국 동물학자 리처드 코니프는 저서 ‘부자’(원제 The natural history of the Rich)에서 부자의 특징 중 하나로 그들이 보통 사람과 격리돼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부자는 보통 사람과 사는 곳이 다르고 취미, 행동, 가치관도 다르기에 일반인과 떨어져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한다고 본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자는 부자 티를 내지 않는다. [GettyImages]




진짜 부자는 평범
물론 반론도 있다. 경제 부문 베스트셀러 ‘이웃집 백만장자(The Millionaire Next Door)’는 미국 백만장자 1000명을 직접 조사해 쓴 책인데, 백만장자의 삶이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과 진짜 부자는 달랐다.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은 비싼 집에서 살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등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진짜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다.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는 삶을 살았다. 반면 진짜 부자는 사는 곳이나 일상이 보통 사람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부자지만 부자 티가 나지 않기에 동네 사람들도 그가 백만장자인 줄 모른다. 평범한 마을에서 일반인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백만장자들. 그래서 책 제목이 ‘이웃집 백만장자’다.

진실은 어떨까. 일단 한국에서 부자로 분류되는 사람이 몇 명 정도인지 살펴보자. KB금융그룹이 해마다 발간하는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부자는 42만4000명이었다. 부자 보고서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인 사람을 부자라고 본다. 한국에서 재산이 있다는 사람은 대부분 부동산을 갖고 있다. 부동산 비중이 크기 때문에 부동산을 제외하고 금융자산으로 10억 원을 가진 사람은 분명 일반적인 기준에서 부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부자가 한국에 42만4000명이 있는 것이다.

한국 부자 중에는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은 부자 아이나 젊은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부자는 중장년 이상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될 수도 있으니 나이 30세 이상을 대상으로 계산해보자. 한국 인구 5170만 명 가운데 30세 이상 인구는 3700만 명 정도다. 3700만 명 안에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부자 42만4000명이 포함돼 있다. 이를 계산해보면 30세가 넘는 성인 87명 중 1명이 부자라는 얘기다.

87명 중 1명이면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치도 아니다.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성인 남녀 수백 명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금융자산 10억 원을 가진 부자가 몇 명은 있다는 얘기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내가 타고 있는 한 칸에 1명 정도는 부자가 있다. 이웃집 백만장자가 괜히 생겨난 단어가 아니다. 정말 이웃집 사람 가운데 부자가 있다.

이런 부자가 대부분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 몰려 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부자 비중이 훨씬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 전체에서 강남 3구의 부자 비중은 45% 정도이고, 강남 3구 이외 서울 지역 부자는 55% 정도다. 전국으로 따지면 비(非)서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부자가 전체 부자의 55% 정도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부자가 더 많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서울에 부자가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울 아닌 지역에 부자가 굉장히 드문 건 아니다.



부자는 티를 내지 않아
부자가 이렇게 많은데 왜 내 주위에는 부자가 없을까. 부자가 없는 게 아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 직장 동료, 학교 동기 등 그 사람이 부자라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부자는 자신이 부자라는 표를 내지 않는다. “나는 부자다” “통장에 얼마가 있다”고 떠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가끔 있기는 하다. 돈을 얼마 벌었다고 책을 쓰거나 하는 경우다. 하지만 대다수 부자는 자신이 부자라는 표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 맞춰서 대화하고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가 자기와 유사한 경제 수준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같이 어울리고 대화하지만 아주 친한 관계가 아닌 한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내 경험을 보자. 대학생 시절, 대학원생 시절, 박사 과정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다.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길게는 30년, 짧게는 20년을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중 부자가 있다. 열 손가락이 넘지는 않지만, 다섯 손가락은 넘는다. 하지만 그들이 부자라는 걸 예전에는 몰랐다. 내가 어느 정도 자산이 생긴 다음에야 그들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그들이 어느 정도 산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학생 시절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고, 대학원생 시절에도 돈을 벌기 위해 프로젝트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학생 시절에는 대부분 돈이 없어 돈 버는 일이 있으면 달려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몇몇은 돈 버는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네들이 정말로 부자라는 건 몰랐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전문직으로 일하는 친구, 회사 임원을 하는 친구, 사업으로 성공한 친구들이다. 어느 정도 잘살게 됐다는 건 알았다. 사회생활로 성공했으니 돈을 얼만큼 번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큰 부자가 됐다는 건 몰랐다.

이들이 부자라는 건 사소한 데서 알게 된다.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걱정이라는 얘기를 한다고 치자. 이전에는 ‘종합부동산세를 내다니 부자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도 종합부동산세를 낸다. 보유한 주택 가격이 어느 정도일 때 세금이 얼마 나오는지, 2주택이나 3주택일 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안다. 내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모를 때 상대방은 자세히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것과 관련된 고충을 털어놓으면 서로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보통은 그런 대화를 할 사람이 거의 없다.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는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공감을 전혀 받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잘난 척한다느니, 돈이 많아서 좋겠다느니, 세금은 내야 한다느니 같은 말밖에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털어놓게 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상속세·증여세 문제, 어떤 스포츠카를 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얘기할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의 재산 상황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부자끼리 통하는 돈 이야기
결론적으로 부자가 별개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이웃집 백만장자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그들이 백만장자였다는 걸 몰랐다. 한두 해 만난 사이가 아니다. 10년 넘게 만난 사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이 큰 부자라는 걸, 부자가 됐다는 걸 몰랐다. 그동안 나는 친구로서 그들을 만나 대화했다. 그러나 돈과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부자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자기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 않는다.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고 공감한다고 느낄 때 돈 이야기를 꺼낸다. 반대로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돈과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돈 이야기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하고만 한다. 즉 부자끼리만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자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부자끼리만 통하는 뭔가가 있다. 그렇다고 부자가 보통 사람과 완전히 떨어져 산다는 말은 맞지 않다. 아주 큰 부자, 재벌가 사람이 아닌 이상 부자는 우리 사이에 끼여 있다. 단, 돈과 관련된 얘기는 보통 사람과 하지 않으며, 부자끼리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게 좀 더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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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7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