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시력을 잃은 지상진 씨(오른쪽)는 17일 공주백제마라톤에서 고교 동창 방현태 씨와 10km를 완주한 뒤 이날 두 사람의 손목을 묶어준 가이드러너용 줄을 함께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공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 씨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달린 건 약 약 4년 만이다. 지 씨는 “시력이 나빠진 지 얼마 안 돼 바깥에서 뛰는 경험을 하기 쉽지 않았는데 친구가 같이 뛰어준 덕분에 완주했다. 되게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제한시간(1시간 30분) 안에 들어와 다행”이라고 했다.
2019년 황반 변성으로 시력을 잃게 된 지 씨는 시각장애가 생긴 뒤 1년은 집에만 머물렀다. 안압이 높았던 지 씨는 직장을 쉬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시력이 돌아올 줄 알았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시력이 나빠진 시기가 겹친 영향도 컸다.
오히려 장애가 없던 때에는 마라톤 대회는커녕 달리기도 하지 않았던 지 씨는 “그동안 런닝머신, 로잉머신, 사이클 등을 집에 들여놓았다. 그래도 집 안에서 운동하다 보니 바깥 공기를 맡으면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살고 있는 공주에서 대회가 열려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둘은 시각장애인협회에서 대여해준 ‘가이드러너’용 줄을 서로의 손목에 감고 뛰었다. 손목에 고정하는 게 아니라 샅바처럼 자유롭게 감았다 풀 수 있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끈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마라톤도, 가이드 러너도 처음이었던 친구 방 씨는 첫 ‘가이드 러너’를 마친 소감을 묻자 “제가 가이드를 했다기보다는 친구가 저보다 잘 뛰어서 오히려 제 페이스에 맞춰줬다. 레이스 초반에는 ‘다신 못 뛰겠다’ 싶었는데 달리다 보니 ‘내년에도 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지 씨는 “친구야, 내년에도 같이 뛰자”며 활짝 웃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