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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광풍에 뒤집힌 SKY 합격선… 서울대 이공계열 정시 합격점수, 고대-연대에 처음 역전당해

입력 | 2023-09-18 03:00:00

[의대 광풍에 바뀐 SKY 합격선]
서울대 합격권 학생, 他대학 의대로
2023학년도 국어-수학-탐구 평균
고대 94.9 연대 94.2>서울대 93.9



뉴시스 제공


국내 입시 역사상 처음으로 2023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서울대 이공계열 합격점수가 고려대, 연세대보다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수학, 탐구 영역 백분위 평균 기준으로 서울대는 93.9점, 고려대 94.9점, 연세대 94.2점이었다. 서울대에 합격할 만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의약학계열을 선택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17일 종로학원과 함께 2020∼2023학년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정시 합격 점수와 2022∼2023학년도 정시 의약학계열(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합격 점수를 비교했다. 합격 점수는 대입정보포털 ‘어디가’에 각 대학이 공시한 정시 최종 등록자 70% 컷을 활용했다. ‘70% 컷’이란 최종 등록자가 총 100명이라고 가정하고 이들의 수능 국어, 수학, 탐구 두 과목 백분위의 평균값을 냈을 때 70등의 점수다.

서울대의 정시 이공계열 합격 점수는 2020학년도 95.0점, 2021학년도 95.1점, 2022학년도 95.0점으로 모두 고려대와 연세대를 앞섰다. 하지만 2023학년도에는 서울대가 두 대학 다음으로 떨어졌다. 2022, 2023학년도 SKY 이공계열의 합격 점수는 전국 의약학계열 합격 점수보다 모두 낮다.

이는 ‘의대 열풍’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국 25개 의대와 서울대 이공계열의 합격 점수 격차는 2023학년도에 4.2점으로, 전년(2.9점)보다 벌어졌다. 반면 고려대와 연세대는 격차가 줄었다. 서울대에 지원할 만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서울대 간판보다는 의대’를 택하고, 그보다 성적이 낮은 수험생이 서울대 이공계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대와 연세대 이공계열 학생들은 의대를 진학하기에는 성적이 부족하다고 봐 이탈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합격선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험생 배치표에서 서울대가 고려대와 연세대 아래에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서울대 중위권 학과 점수가 떨어져도 고려대, 연세대 상위권 학과에 걸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블랙홀’ 의대 열풍으로 인한 서울대의 합격 점수 하락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 중이라 “의대에 갈 절호의 찬스”라며 N수생까지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공계보다 지방의대”… 합격생 ‘의-치-한-약-수’로 이탈


서울대 이공계, 고대-연대에 역전당해
이과 수험생들 의대 쏠림 현상
문이과 통합 수능 이후 더 심해져
이공계생도 반수하고 의대 지원

“서울대 이공계열 합격 점수가 연세대, 고려대와 몇 점 차이 날 것 같습니까. 서울대가 더 낮은 학과도 많아요. 서울대 올 애들이 다 의대 가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서울대에 합격하기 어려운 점수의 학생이 서울대에 오고, 조금 더 공부해서 ‘의대 가겠다’고 나가요.”

최근 한 서울대 교수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동아일보와 종로학원이 대입정보포털 ‘어디가’에 공시된 입시 결과를 분석했더니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서울대 이공계열 정시 합격 점수(70% 컷·93.9점)가 전년보다 1.1점 떨어져 고려대(94.9점), 연세대(94.2점)보다 낮았다.



● ‘서울대보다 의대’ 최상위권 이동
서울대 이공계열의 정시 합격 점수는 2020∼2022학년도에 각각 95.0점, 95.1점, 95.0점으로 비슷했다. 정시 제도에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데 2023학년도에는 93.9점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대 의대는 합격 점수가 99.2점에서 99.4점으로 올랐다. 또 서울대 인문계열은 합격 점수가 95.7점으로 고려대(94.1점), 연세대(91.2점)를 앞섰다. 이는 2022학년도부터 통합형 수능 체제로 바뀌며 점수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과생이 서울대에 가기 위해 인문계열로 교차 지원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이공계열 점수가 떨어진 사이 전국 의약학계열(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의 합격 점수는 올랐다. 2022학년도와 2023학년도 의대(25곳) 정시 합격 점수는 97.9점→98.1점, 치대(9곳) 96.8점→97.3점, 한의대(5곳) 96.0점→97.2점, 약대(24곳) 95.5점→96.3점, 수의대(8곳) 95.4점→96.1점으로 높아졌다.

입시업계에서는 ‘의대 광풍’이 불러온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서울대 이공계열이 아닌 의약학계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정시에서 의약학계열만 지원하거나 서울대 이공계열에 지원했어도 의약학계열 합격 뒤 빠져나가면 그보다 점수가 낮은 수험생이 등록해 이공계열 합격 점수가 낮아진다. 고려대, 연세대 이공계열 합격 가능 점수는 대개 의대 합격 안정권이 아니라 소신 지원을 하다 보니 서울대 합격 점수보다 높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2022학년도부터 도입된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서는 문과생보다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에게 유리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의약학계열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올해 11월 16일 치러지는 2024학년도 수능 지원자 중 졸업생 등의 비율은 35.3%(17만7942명)로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래 세 번째로 높다.



● 이공계열 상당수 ‘의대 지망생’
고려대, 연세대도 ‘의대 열풍’을 비켜 갈 수는 없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연고대 이공계열 상당수가 만족을 못 하고 의대를 준비한다”고 전했다. 연고대 합격생은 ‘나보다 점수가 높지 않았던 학생이 서울대 이공계열에 갔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공부해서 의대를 가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도 있다.

종로학원이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2023년 중도 탈락자 규모를 집계했더니 총 2131명으로 최근 5년간 가장 많았다. 이 중 고려대가 897명, 연세대가 822명으로 전체의 80.7%였다. 고려대 관계자는 “한 학기만 다니고 반수를 선택하는 이공계생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SKY 자연계열에서 중도 탈락자 수가 많은 학과는 연세대 공학계열, 고려대 생명공학부, 고려대 생명과학부 순이었다. 과거에는 생명 관련 학과에서 두드러졌다면 이제는 학과를 가리지 않는다는 게 교수들의 의견이다.

서울대 이공계열에 합격하고 의대 입시에 재도전하는 경우도 많다. 2023년 서울대 이공계열에서 중도 탈락자 수가 많은 학과는 생명과학부, 응용생물화학부, 전기·정보공학부 순이다. 응용생물화학부의 경우 재적 학생 52명 중 46%(24명)가 중도 탈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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