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인촌상] 시상식 내달 11일, 상금 각 1억원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18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7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과학·기술 등 3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6∼8월 3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2023년 제37회 인촌상 수상자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습니다.
▽교육=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참빛그룹 회장
▽과학·기술=최순원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
인촌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도연)는 올해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 대해 5월 1일부터 후보자를 접수해 8월 말까지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3개 부문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인문·사회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와 경성방직을 설립하고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를 통해 인재를 양성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87년부터 인촌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습니다.
시상식은 10월 11일 열릴 예정입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억 원과 메달을 각각 수여합니다.
제37회 인촌상영광의 수상자들
실력-인성 두루 갖춘 인재 육성…“세계적 예술인 배출이 나의 사명”
교육 이대봉 이사장
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예고에서 만난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82·참빛그룹 회장)은 인촌상 수상 소감을 말한 뒤 한동안 교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습실부터 학생들의 공연 기회를 넓히기 위해 본관 옆에 지은 서울아트센터까지, 어느 하나 이 이사장의 애정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6년 전 학교폭력으로 셋째 아들 대웅 군을 떠나보내면서다. 서울예고 2학년으로 촉망받는 성악도였던 아들은 선배들에게 맞아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가해자에 대한 울분을 삭이고 또 삭이면서, 대신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1988년 만든 ‘이대웅음악장학회’가 시작이었다. 아들과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을 지원하기 위해 성악 콩쿠르를 개최하고, 유학비도 지원하고 있다. 음악도뿐 아니라 그룹이 진출한 중국의 독립운동가 자손, 베트남 소수민족 학생 등에게도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올해까지 36년간 5만1000여 명에게 약 221억 원을 지원했다.
2010년엔 부실 운영으로 흔들리던 서울예술학원(서울예고, 예원학교) 재단을 인수했다. 아들은 떠났지만 아들이 사랑했던 학교가 더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학생들의 교육 환경부터 개선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국내 최고 수준의 학교들을 직접 둘러본 뒤 일반 예고에선 기대하기 힘들었던 연습실을 만들었다. 이 이사장은 “예술교육을 열심히 뒷받침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예술인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이 이사장은 “폭력과 예술은 공존할 수 없다”는 소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신입생들은 입학 후 가장 먼저 학폭 예방 교육을 받는다. 밤늦게까지 연습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에게 이 이사장은 늘 운동을 강조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듭니다. 거기서 좋은 예술도 나온다고 믿습니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예술인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공적 194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진주농림고를 자퇴한 뒤, 부산과 서울에서 부두 하역, 탄피 수집, 물류 사업 등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1975년 동아항공화물을 설립해 계열사 17곳을 가진 참빛그룹으로 키웠다. 2010년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한 뒤 지금까지 사재 약 550억 원을 출연했다. 5월엔 서울예고에 1084석 규모의 공연장(도암홀)을 갖춘 서울아트센터를 개관했다. 학교 인수 후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발레리나 박세은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하며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서울예고를 국내 최고 예술 명문고로 키웠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매입 등 앞장… “문화 지키는 작은 씨앗 뿌릴 것”
언론·문화 김종규 이사장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84)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인촌 선생이 뿌린 문화의 씨앗이 지금까지 이어져 숲을 이뤘듯 나 역시 문화를 지키는 작은 씨앗들을 뿌릴 것”이라고 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탠 회원들의 기금으로 문화유산을 지키는 특수법인이다. 김 이사장은 2007년 문화유산국민신탁 설립 당시 설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9년부터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을 돈 받고 할 수는 없다”며 무보수로 일한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12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을 매입하는 등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해 왔다. 김 이사장은 “국가 예산으로 모든 문화유산을 지킬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민들이 보탠 돈이 우리 문화를 지켜 국격(國格)을 높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그는 박물관·출판·미술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발로 뛰며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을 늘려 왔다. 2009년 취임 당시 약 300명이었던 회원 수는 현재 1만6000여 명에 이른다. 김 이사장은 “내가 바꾼 것은 단 하나, 월 1만 원 넘는 돈은 후원하지 못하도록 한 것뿐”이라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문화유산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인식을 심는 것이 돈보다 더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월 최고 후원금 액수를 1만 원으로 낮추자 회원 가입을 주저했던 이들이 선뜻 가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고려 현종 때 판각한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국보)을 비롯해 10만 점이 넘는 고문헌 등 문화유산을 수집했으며, 1990년 국내 처음으로 출판·인쇄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해 이를 지켜왔다. 삼성출판사에서 이사 및 회장(1964∼2005년)으로 일하면서도 돈을 모으는 족족 거금을 들여 고문헌을 사들였다. 주변에선 “새 책을 팔아 왜 헌 책을 사느냐”며 만류했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
“책을 팔아 돈을 벌었으니, 이를 사회에 환원하려면 역시 책과 문화로 해야겠지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우리가 힘이 없을 때 지키지 못했던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공적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지키고 가꾸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헌신했다. “국력은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국격(國格)은 문화유산이 말해 주는 것으로 하루아침엔 안 된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문화유산 지킴이로 헌신해 왔다. 1990년 국내 최초 출판·인쇄 박물관인 삼성(三省)출판박물관 설립을 주도했다. 박물관은 초조대장경 등 국보를 비롯한 문화재 10만여 점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12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한제국공사관 매입에 나서, 1910년 일제가 강제 매각한 지 102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양자과학 분야 석학 주목… “순수과학자로서 실용부문 기여하고 싶어”
과학·기술 최순원 교수
인촌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최순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물리학 교수(36)는 “과학자로서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큰 상을 받아 부담도 되지만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받고 2021년 MIT 교수로 부임한 최 교수는 양자과학 분야 석학으로 주목받는 세계적 인재로 꼽힌다. 양자시뮬레이션, 양자계측, 양자정보이론, 양자인공지능, 양자계산 및 알고리즘 개발 등 양자과학 전 분야에 걸친 연구 논문을 유력 학술지에 게재해 왔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편수가 약 18편에 이른다.
최 교수는 특히 이론 물리학자로서 실험과 이론의 가교 역할을 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사 과정 중인 2017년 ‘시간 결정(Time Crystals)’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네이처지 표지를 장식한 공동 연구도 이론과 실험의 융합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시간 결정은 공간 속의 ‘결정체’가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물질의 원자구조 등이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변화하는 물질을 말한다.
최 교수는 “움직임은 에너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안정화해 동기화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다 안정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곧바로 연구제안서를 썼고, 동료였던 최준희 현 스탠퍼드대 교수가 실험으로 이를 구현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제안서 작성에서 첫 실험 데이터가 나오기까지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최 교수는 올해 초 양자 시뮬레이터의 오류 검증 방식을 개발해 관련 논문이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각각 실렸다. 양자 시뮬레이터는 특정 물질의 양자역학적 현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장비다. 최 교수는 시뮬레이터에서 양자현상을 고안할 때 오류를 검증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해 상용화 시기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교수는 “100년 전 트랜지스터 연구자에게 컴퓨터가 어디에 쓰일지 물었다면 ‘회계장부 작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정도로 답했을 것”이라며 “이미 양자과학은 컴퓨팅, 암호, 신약 등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를 바꿀 것이다. 순수 과학자로서 새롭게 자연을 이해하고 실용 부문에도 기여하는 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공적 최순원 교수는 양자시뮬레이션, 양자계측, 양자인공지능, 양자계산 및 알고리즘 개발 등 양자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쳐 최첨단 연구 결과를 낸 세계적인 석학이다. 다이아몬드 인공 원자를 활용해 양자시뮬레이션으로 시간 결정(Time Crystals)을 구현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양자 시뮬레이션이나 계산을 위해 중요한 ‘결맞음’이 깨지는 에러율을 효율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 최신 이론 개발과 동시에 이를 실험으로 구현하는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최 교수는 올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신진연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37회 인촌상 심사위원
▽교육 △위원장 김경성 전 서울교대 총장 △위원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 신종호 서울대 교수
▽언론·문화 △위원장 김영석 연세대 명예교수 △위원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한규섭 서울대 교수
▽인문·사회 △위원장 김혜숙 전 이화여대 총장 △위원 구범진 서울대 교수, 김영민 서울대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과학·기술 △위원장 노정혜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이긍원 고려대 교수, 천진우 연세대 교수,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