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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전략 동맹으로 변화… 군사 기술이전 두고는 밀당 이어질 듯”

입력 | 2023-09-18 21:21: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박 6일 간의 방러 일정 중 대부분의 시간을 러시아의 군사 시설을 둘러보는 데 할애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 협력에 방점을 찍으며 공개적인 반대 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과감한 군사협력 보다는 서로 간에 ‘더 받아내고 덜 주려는 밀고 당기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쟁 중인 러시아는 당장 북한으로부터 필요한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공급받으려 할 가능성이 크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정면 위반하는 정찰위성 기술 이전 등은 미루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반면 북한은 전쟁이 마무리되기 전에 러시아로부터 군사 핵심 기술을 이전받고자 할 것이란 분석이다.




● “북-러 간 물밑 기싸움 시작”
대북, 대러 관계 전문가들은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외교적 쇼에 불과했던 북러 동맹이 상호거래를 기반으로 한 전략 동맹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한과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구도에 대응하는 모습을 과시한 것”이라며 “한러 간 전략적 협력관계가 틀어지고 북러가 전략적 협력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북러정상회담이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개최된 것을 두고 “북한이 두 차례 실패한 정찰위성 개발을 러시아가 전폭 지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찰위성 기술의 기본 원리는 사실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과도 겹친다”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모든 기술을 과감하게 전격 이전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푸틴은 이미 대외적으로 국제법 틀 안에서 북한과 협력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과학자들을 보내 위성개발을 돕는 등 과감한 기술이전을 하기보다는 위성에 달리는 렌즈 등 일부 부품 개발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러 기간 직접 살펴본 러시아의 최첨단 전투기인 수호이(Su)-57 등을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북한 공군이 가지고 있는 최신 전투기인 미그-29를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2020년 5만t(톤)의 밀을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북측에 무상 제공했고 다시 한번 그럴 준비가 돼 있다”고 제안했지만 북한 측이 거절했다고 알렉산드로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17일 밝혔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러 간의 물밑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포탄을 제공하는 대가로 밀 수만톤만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며 “러시아는 북한이 원하는 군사 기술을 ‘살라미’처럼 쪼개서 주려 할 것이고, 김정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전에 포탄 제공을 대가로 실질적인 군사 기술을 이전받고자 하는 ‘동상이몽’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중·러에 대한 통합 외교 전략 세워야”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1950년대 중소(中蘇) 등거리 외교 전략을 재현하려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1960년대 이후 중국의 경제적 지원 등에 의존해왔던 북한이 절박한 처지의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노선을 보인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러 밀착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북·중·러 세 국가는 미국 주도의 안보 질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및 유럽연합 국가들과 함께 대러·대북 제재에 나서는 한편 대중·대러 통합 외교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위성락 전 주러 대사는 “(북러가)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데 대해 독자 제재를 하거나, 이에 연대하는 나라들과 함께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대증적인 대응으로 종결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위 전 대사는 “궁극적으로는 중국·러시아·미국에 대한 한국의 통합된 전략을 먼저 세우고, 외교의 공간을 열어 상대의 행동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원곤 교수는 “러시아가 김정은 방러 일정에 대해 한국 정부에 설명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은 한국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을 이전해선 안된다는 점을 러시아에 명확하게 메시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