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8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유엔군사령부 주요 직위자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창설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는 유럽의 평화 번영의 ‘린치핀(linchpin·핵심 축)’이었다. 냉전시대 소련 주도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맞서 ‘전략적 균형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 지구적 전쟁 참화의 재발을 막고, 가치와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의 창출과 유지에 크게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나토식 집단안보 동맹’의 힘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의 위상과 입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나토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진즉에 패망의 수렁에 빠졌을 것이다.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나토 동진화’ 탓으로 돌리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소련 부활의 망상과 영구 집권욕에 사로잡힌 독재자(블라디미르 푸틴)의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국제질서 파괴 행위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전략적 실패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나토의 의지와 실력을 간과한 푸틴이 역풍을 맞았다는 것이다. 최근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은 나토의 공세로 코너에 몰린 푸틴의 궁여지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엔사는 대북 핵심 전략자산이기도 하다. 유사시 별도의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도 17개 회원국 전력이 한반도로 즉각 달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먼저 한반도로 투입되는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주일미군 기지) 7곳의 전력은 ‘막강 파워’를 자랑한다. 유엔사 후방기지를 둘러본 정부와 군 관계자들은 그 규모와 위용에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 최근접 유엔사 군수기지인 사세보 기지는 부산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10km 떨어져 있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는 세계 최강의 F-22 스텔스 전투기의 발진 기지다. F-22 전투기는 출격 40여 분 만에 북한의 방공망을 뚫고 핵미사일 기지와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다. 미 7함대가 자리 잡은 요코스카 기지엔 핵추진 항공모함 등이 48시간 내 한반도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다. 유엔사가 ‘포스 프로바이더(force provider·전력 제공자)’로 불리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이 유엔사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사 17개 회원국 가운데 11개국이 나토 회원국이고 그중 3개국(미국 영국 프랑스)이 핵보유국이란 점은 더 의미심장하다. 북한이 유엔군을 상대로 핵을 쓴다면 이들 국가와도 핵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것이다. 유사시 중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대한민국 주도 통일의 국제적 명분을 쌓는 데도 유엔사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반대로 북한으로서는 유엔사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진보정권 때마다 유엔사를 맹비난하며 종전선언을 집요하게 추진한 북한의 저의가 유엔사 해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달 실시된 한미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합연습에는 미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그리스, 이탈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등 10개 유엔사 회원국이 참가했다. 유엔사 회원국은 그동안 연합연습에 참여해 왔지만, 해당 내용을 발표문으로 알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한국도 유엔사 회원국으로 공식 가입하는 한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초래될 수 있는 유엔사와 우리 군 주도의 미래연합사령부 간 지휘조직의 불일치 문제 등 쌓인 숙제도 미리 해결할 필요가 있다. 유엔사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서 대한민국을 매개로 한 집단안보와 국제적 연대를 확고히 하는 것은 안보 국익 극대화의 첩경이자 가장 효과적인 국방 투자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