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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정은]푸틴-김정은 ‘위험한 거래’ 막을 中 지렛대

입력 | 2023-09-18 23:48:00

정상 브로맨스 과시하던 中-러 기류 변화
‘북-중-러’ 고리 끊고 국제사회 책임 다해야



이정은 논설위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년 전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 처음 참석했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와 함께 팬케이크를 구웠다. 고급 캐비아와 보드카가 곁들여진 양국 정상의 친교 행사였다. 같은 감청색 색깔의 앞치마를 두른 두 정상은 언뜻 보기에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 옥죄어 오는 서방의 압박과 제재라는 공통점을 놓고 상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두 권위주의 대국 정상의 ‘브로맨스’는 일견 단단해 보인다. 시 주석이 2013년 정상 자리에 오른 이후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가 러시아다. 같은 해 다자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푸틴 대통령에게 시 주석은 생일 케이크를 내밀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한 인터뷰에서 “(상호 ‘케미’가 작동한 게)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두 정상은 40차례 넘는 만남을 이어오며 함께 크루즈선에 오르고, 술잔을 기울였다.

정상 간 친분으로 끌고 온 양국 관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묘하게 바뀌는 흐름이 감지된다. 지난해 봄만 해도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두둔하던 중국은 이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과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주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결정적으로 중국의 경계심을 높이는 한 방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방 보란 듯이 과시한 김정은과 푸틴의 밀착은 중국엔 대북 영향력 약화를 암시하는 경고등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이뤄지는 북-러 간 결속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북-중-러’의 3국 연대가 강화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 무기거래가 엮여 있는 위험한 관계에 중국은 굳이 끌려들어 갈 생각이 없다고 외교가 인사들은 전한다. 북한, 러시아에 벨라루스, 이란이 연결되는 신(新) ‘악의 축’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섣부른 동참은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의 평판을 훼손할 게 뻔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북-러) 양국 간의 일”이라며 거리 두기에 나선 배경에는 베이징의 이런 복잡한 속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포탄과 미사일 제공 대가로 러시아의 정찰위성, 핵잠수함 기술을 지원받는 거래가 실제 이뤄진다면 이는 한반도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서방으로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장기 소모전으로 비화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일이다. 수사적 압박을 넘어 실질적 대북, 대러시아 영향력을 행사할 대응 방안이 절실하다. 중국이 그 키를 쥔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과 주변국들의 행보는 이미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 유엔총회에서는 북-러 군사협력이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그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12시간 동안 회담했다. 이 회동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 부장은 모스크바를 찾아 러시아 외교장관과 만난다. 상황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지렛대가 어느 방향을 향해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진 느슨한 ‘북-중-러’ 연대에서 중국은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다. 중국이 북-러 간 ‘왕따 연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설득하는 데 외교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올해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논의를 넓혀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23일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어떤 대중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지는 중국의 움직임만큼이나 주목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