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생명 지키는 M-Tech]〈13〉 시동잠금장치 첫 도입 美 현장
1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설치 업체에서 현지 직원이 차량에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하는 모습. 캘리포니아주에만 650곳이 넘는 시동잠금장치 설치 업체가 운영 중이다. 로스앤젤레스=윤다빈 기자
“음주운전 한 번으로 입은 손해가 1만 달러(약 1300만 원) 이상입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1일 오후 4시경 매슈 하드먼(가명·41) 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업체에서 시동을 걸 때마다 음주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했다. 그는 올 7월 혈중알코올농도 0.12%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음주운전 초범인 만큼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6개월 부착과 면허정지 1년 중 선택하라고 명령했다.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하드먼 씨는 차가 없으면 생계에 큰 지장이 생겨 시동잠금장치 부착을 결정했다.
시동잠금장치 설치는 1시간 반가량 걸렸다. 설치비는 100달러(약 13만 원)였다. 장치를 설치하자 시동 버튼을 눌러도 엔진이 움직이지 않았다. 차량에 부착된 음주측정기 전원을 먼저 켜자 ‘Blow’(불라)라는 안내가 나타났다. 4초간 길고 강하게 숨을 불어넣자 기계에 ‘Passed’(통과) 표시가 떴는데 그 후에야 시동이 걸렸다.
● 4년간 음주운전 약 6000건 예방
효과가 입증되자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 1월부터 음주운전 초범에게도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캘리포니아주 교통국(DMV) 관계자는 “2018년 12월까지는 음주운전 초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30일 동안 면허가 정지됐다”며 “법안 개정 후 ‘30일 면허 정지’가 사라지고 ‘시동잠금장치 설치’가 의무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동을 걸며 첫 번째 음주 측정을 통과했다고 끝이 아니다. 시동잠금장치는 운전 중 수시로 음주 측정을 요구한다. 평균적으로 20, 30분마다 시동잠금장치에서 음주 측정 신호음이 울린다. 운전자가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울 시간을 감안해 6분 내 음주 측정에 응해야 한다. 시동잠금장치 생산·설치 업체 인톡살록 관계자는 “운전 중 술을 마시거나 운전자를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정 주기로 다시 측정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시동잠금장치가 부착된 차량으로 음주운전을 시도하면 잠금(LOCK) 상태가 된다. 설치업체에 50∼60달러(약 6만5000∼7만8000원)의 벌금을 내야 잠금 상태를 풀 수 있다. 음주운전이 상습성이 큰 범죄라는 점을 감안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장비 수리를 위해 시동잠금장치 설치 업체를 찾은 제니퍼 셰리(가명·40) 씨는 “비용 부담이 있지만 시동잠금장치 설치 후 술을 마신 채 운전하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고 했다. 역시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한 마이크 틴달(가명·33) 씨도 “운전 때마다 호흡 측정을 하는 게 귀찮긴 하지만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확실히 높아졌다”고 했다.
● 2개월마다 점검도 받아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사용중인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운전자가 시동잠금장치 생산 업체에 연락을 하면 사전에 예약된 설치 업체로 장치를 보내준다. 로스앤젤레스=윤다빈 기자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한 지역은 미국 전역과 유럽연합(EU)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7년 8월 기준으로 미국에서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한 차량은 30만 대가 넘는다. 미국에는 수천 개의 시동잠금장치 설치소가 운영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만 운영 중인 설치소가 650곳 이상이다.
부작용이나 편법도 없지는 않다. 한 설치소 관계자는 “간혹 기계가 콜라, 주스, 녹차 등을 알코올로 인식해 잠금이 잘못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운전자는 음주운전 적발 시 자신의 차량을 폐차하고 가족이나 친구 명의의 차량을 운전한다. 또 시동잠금장치를 조작해 음주 측정 없이도 운전을 하도록 개조하기도 한다.
DMV 관계자는 “장치를 조작하다 적발되면 최악의 경우 평생 면허를 잃을 수 있도록 하면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음주운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인식시켜야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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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