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차례를 잘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3-09-19 23:26:00

<189> 충동 조절이 잘 안 된다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민수는 놀이나 게임을 할 때 순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 놀이나 게임뿐 아니라 지하철 매표소나 화장실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한다. 유치원에서 모둠 활동을 하면서 차례대로 발표를 할 때도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들기 일쑤다. 엄마는 내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민수가 학교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산만한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참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를 따라 은행에 가서도 일이 빨리빨리 처리되어야지 조금이라도 더뎌져서 기다리게 되면 짜증 내기 시작해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문제 행동까지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배가 고픈 것도 참지 못하고, 날이 더워도 견디지 못하며, 지루해도 몸을 배배 틀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가 참고 견디는 것을 어려워하면 난감한 일이 참 많이 생긴다. 아이 혼자만의 문제라면 어떻게든 아이가 덜 괴로워하는 방향으로 부모가 다뤄낼 수 있지만, 순서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이 아이들이 순서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충동 조절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빨리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그 과정을 기다리는 동안에 충동과 욕구가 올라온다. 그것을 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이 상태로 계속 생활하게 된다면 친구와의 사이도 나빠지고, 또래와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가 아이와 놀아주면서 차례를 지키는 것,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인내심을 길러주어야 한다. 놀면서 규칙이나 차례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이것은 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자기만 그러는 줄 알고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게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이다.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그 이유를 짧고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기다리지 못하고 화를 내면 “화내지 마! 너 데리고 못 다니겠다. 다시는 엄마 외출할 때 데려오지 않을 거야”라고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일단 “기다리는 것 힘들지? 엄마가 알아. 그런데 지금은 참고 기다리든가, 너무 힘들어서 못 기다리겠다면 그냥 갈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아이의 의견을 물어본다.

만약 그 일이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라면 아이에게 단호하게 “어차피 이것은 하고 갈 수밖에 없어. 네가 울어도 기다렸다가 해야 해. 이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하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니?”라고 이야기한 다음, 아이가 참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활동들을 제시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너무 심하게 보채는 바람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벌컥 화를 내고 아이 탓을 하며 혼내는 부모가 많다. 그런데 부모가 화를 내면 오히려 충동적으로 화내는 것을 아이가 배우게 된다.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도저히 차분히 대처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다음에 가르쳐주는 편이 낫다.

어떤 차례나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다섯 가지를 상상해 보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져야 가장 맛있을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또 주말에 부모와 무엇을 하고 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하는 것도 좋다. 1부터 10까지 세어 보고 다시 10부터 1까지 거꾸로 세어 보는 것을 부모와 서로 주고받으면서 놀이 하는 것도 시간을 보내기 좋다. 또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이나 큐브, 스케치북, 색종이 같은 것들을 준비해 가서 그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아이가 잘 기다려냈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의 기다리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때 보상 기준을 너무 높게 잡지 않도록 조심한다. 보상 기준을 높게 잡는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너무 쉽게 얻으면 버릇이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높은 기준은 아이에게 좌절감과 실망감을 준다. 거기에서 오는 분노나 불만족감이 문제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아이가 조금만 노력해도 얻을 수 있도록 낮은 수준부터 시작해야 한다. 차츰 아이의 상태와 능력에 따라 상향 조절해 나가는 것이 좋다. 잘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라면 5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그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